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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배려가 넘치는 사회를 꿈꾸며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전국 변호사의 약 75%인 1만5000여명이 속해 있다. 그러다보니 회장실은 늘 손님맞이로 분주하다. 나른한 봄날 오후라고 예외는 아니다. 점심시간을 막 지나서 대법관을 역임하신 박우동 변호사님께서 방문하셨다. 같은 아파트 주민이지만 단지 내에서 뵌 적은 없다. 5분이면 충분하시다면서 만나기를 청하셨다. 말씀을 나누던 중 비닐 봉투에서 책을 한권 꺼내셨다. 필자가 저술한 “이변입니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이었다.

집 근처 중고서점을 자주 방문하시는데 서가에 꽂혀 있는 필자의 책을 발견하시고 반가운 마음에 꺼내셨다고 한다. 그런데 책의 안쪽에 ‘존경하는 아무개 변호사님께 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변호사의 실명을 자필로 기재하여 증정한 책이 중고서점에서 팔린다는 것이 보시기에 좋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 책을 구입해서 가지고 오신 것이다. 원로변호사님의 후배들에 대한 배려에 가슴이 찡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판결만큼 관심을 끈 것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친절히 설명하던 재판장의 태도였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것을 정말 훌륭하게 증명해 주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우수법관으로 선정한 김세윤 부장판사의 국민에 대한 배려가 돋보였다.

법정에서 당사자나 변호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다 알고 있다면서 묵살하는 판사들이 있다. 자신이 경험하지도 않은 일을 다 안다는 것은 독선이고 오만이다. 오판의 출발점이다. 선고를 할 때도, 판결문에서도 왜 그런 판결을 하였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판사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재판뿐만 아니라 모든 재판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다. 당사자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판결에서 친절히 설명하는 배려만으로도 재판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

의뢰인들은 사건을 잘 해결 하는 변호사보다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변호사에 대해 더 만족한다고 한다.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것이다, 의뢰인 말을 잘 들어 준다는 것은 그만큼 사건의 내용을 잘 파악하기 때문에 물론 승소할 가능성도 높다.

얼마 전 검경수사권과 관련하여 검찰 패싱이 이목을 끌었다. 최근 건강보험과 관련하여 대한의사협회 패싱이 논란이 되고 있다. 불만의 표현방식에 대한 지적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소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제도란 시행 전까지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없다. 시행 전에는 비록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선택을 위하여 충분히 의견을 듣고 말할 기회를 제공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재판을 하다보면 판결보다는 조정으로 끝내는 경우가 감정의 앙금을 줄이게 됨을 자주 느낀다, 조정하는 과정이 서로에 대한 배려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술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를 나누어 두 배를 만드는 것이 배려이다. 불혹의 시절을 두 번 이상 지내면서 배려의 미학을 체화시키신 원로 변호사님의 짧은 방문을 통해 배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감사한 마음에 조만간 아파트 단지 내의 허름한 목욕탕에 모시고 등이라고 밀어드려야겠다. 권력이란 봄날 벚꽃보다도 한 순간이라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인데 왜 권력은 배려를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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