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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을 잊은 지하철②]밀려오는 인파에 비상대기…버스터미널역 직원들의 명절
-지하철 고속터미널역ㆍ강변역 명절 풍경
-실종ㆍ분실신고 급증에 직원 교대 근무
-취객 응대할 때 상처받기도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설 명절에 서울 버스터미널과 닿아있는 지하철역은 전쟁터가 된다. 역사 안은 귀성길에 나선 승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고, 실종ㆍ분실 신고와 취객 제보도 급증하는 탓이다. 남들 쉬는 이달 15~18일 연휴, 이런 민원들을 소화하며 일해야 하는 이가 있다. 긴장의 끈을 조여매는 지하철역 직원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강호암(52) 부역장은 서초구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과 이어지는 지하철 3ㆍ7ㆍ9호선 고속터미널역 중 3호선 역에서 2년 6개월째 근무 중이다. 1992년 입사한 그는 지난 26년 간 명절을 온전히 보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이번 명절에도 강 부역장 등 직원 20명은 4개반으로 나눠 교대근무를 한다. 
서울 시내 지하철역 개찰구 모습.

강 부역장은 “어릴 때는 쉬는 날에 더 바빠지는 이 일이 속상하기도 했다”며 “지금은 제가 안 쉬면 다른 수천, 수만명이 편히 연휴를 보낸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일하려고 한다”고 했다.

설 명절에 승객 수가 1.5배 이상 증가하는 이 역에서 가장 많이 늘어나는 민원은 실종ㆍ분실이다. 주로 지하철을 탈 때 아이를 놓쳤다거나 선물세트를 잠깐 놔뒀는데 사라졌다는 내용이다.

강 부역장은 “신고가 들어오면 비상이 걸려 화장실에 있다가도 뛰어와 주변 확인, 해당 지하철의 동선 파악, 상황실에 연락 등 일을 급박히 진행한다”며 “아이를 찾으면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 승객이 몰려있는 모습.

안전사고도 주시 사항이다. 3개 호선이 교차하는 역인 만큼 고속터미널역에는 에스컬레이터만 24개가 있다. 귀성길로 승객들이 뒤엉키니 낙상사고가 일어나기 좋은 환경이다. 이에 따라 역 직원은 작동 장치를 수시로 확인한다. 퇴근할 때 긴장이 풀리고 나서야 눈이 충혈됐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고속터미널역은 들뜬 승객들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더욱 바쁘다.

14일 오후 3~8시 대합실에 오는 승객에게 한 음료회사 음료를 나눠주는 행사로, 1만5000명이 찾아올 것으로 보고 있다. 강 부역장은 “막바지 행사 준비로 신경 쓸 것이 많아졌지만, 뿌듯함이 모든 피로를 날려준다”고 했다.

광진구 구의동 동서울종합터미널과 이어지는 지하철 2호선 강변역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1년6개월째 근무 중인 나병집(55) 부역장은 “32년 간 명절을 제대로 못챙기는 동안 가족들은 이미 체념했다”며 “궂은 일에 앞장 선 막내 직원 한명 말고 남은 직원들은 모두 근무한다”고 했다.

설 명절에 일을 하며 가장 힘들 때는 취객을 응대하는 순간이다. 나 부역장은 “승객 수가 배 가까이 느는 만큼, 취객 수도 많아지는 시기”라며 “종종 폭언을 들을 때가 있는데 사람인지라 상처를 받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고향을 못 가 속상해서 술을 마셨다는 승객도 많아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역 직원들의 근무 동력은 승객의 응원이다. 밝은 인사와 함께 ‘고생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면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없던 힘도 솟아난다는 것이 두 부역장의 말이다.

한편, 서울교통공사는 이번 설 명절에 지하철역 내 운송ㆍ소방장비 점검 횟수를 늘리고, 필요시 근무인력을 추가 투입하는 등의 ‘특별수송기간’을 운영한다. 고속터미널역과 강변역, 서울역 등 승객 수가 특히 많아지는 역이 대상이다.

공사 관계자는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각심을 갖고 승객을 안전히 모시겠다”고 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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