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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차별’ 방치된 자리마다…악마가 자랐다
‘2017 올해의 작가상’ 송상희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서 내달 18일까지

아기장수 설화 바탕…난민문제 지적
“다름에 대한 배척, 인간본성일지라도
살아갈 약간의 공간은 주어야 함을…”


“나와 다름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파시즘적 사고가 아기장수 설화와 닿을 수 있겠다 싶었다. 아기장수는 ‘날개’ 때문에 죽어야 했던게 아니다. 나와 달라서 없어져야 한다는 거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7’의 최종 수상자인 작가 송상희(47)는 수상작인 3채널 비디오 작품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2017)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네델란드에서 산다. 2008년 에르메스상 수상 직후 건너 갔으니 햇수로 10년째다. 유럽사회에서 ‘이민자’로 살았던 그에게 최근의 난민문제는 다른 통찰을 가능하게 했다. “유럽 곳곳에서 발생하는 테러, 무섭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들이 저질렀던 일을 그대로 받는 측면도 있다. 관리하지 않고, 보듬어 주지도 않고 수십년 넘게 쳐냈다. 그들이 악마가 되서 돌아왔다”는 그는 “사람들의 사고 깊은 곳엔 ‘피의 계급’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던 ‘인종차별’, ‘인종의 계급’을 송 작가는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송상희, 다시 살아나라 아가야, 2017, 3채널 영상설치, 설치전경 [제공=국립현대미술관]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는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송상희 작업의 레토릭을 충실히 따랐다. 이전작인 ‘변강쇠가’(2015)와 마찬가지로 설화를 모티브로 권력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희생당한, 억압받은 이들을 전시장으로 소환한다. ‘변강쇠가’는 메르스사태가 한창일 당시 외부에서 들어온 괴질에 맞서야할 국가가 국민을 선택적으로 일부만 보호하는 모습과 경제적으로 피폐해진 조선후기를 배경으로 유랑민이 속속 죽어나가는 내용과 교차지점을 찾아냈다.

비슷하게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는 ‘아기장수’ 설화를 차용한다. 설화는 기득권에 의해 끝내 좌절된 세력의 이야기다. 가난한 평민의 집에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아기가 태어나는데, 이는 훗날 민초를 구원하고 세상을 열 ‘아기장수’다. 관군들이 이 아기장수를 죽일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를 몰살한다는 걸 아는 부모는 자기 손으로 아기를 죽인다. 무덤에 묻힌 아기장수는 부활하는 버전과 끝내 죽임을 당하는 버전이 있지만 결론은 가난한 이들 혹은 억압받은 이들이 주류인 세상은 좌절된다는 것으로 같다. 

송상희, 세상이 이렇게 종말을 맞이한다 쿵소리 한번없이 흐느낌으로, 2017, 타일벽 설치, 8채널 음향설치, 가변크기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설화를 담은 텍스트와 송작가의 드로잉이 3채널 영상 중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나머지 두 채널엔 희생의 역사가 서린 유적지의 현재 모습과 학살ㆍ배제ㆍ추방의 기록 사진을 보여준다. 또한 나치의 인종교배 프로젝트인 ‘레벤스보른’의 아기농장 영상도 지나간다. 작가는 체르노빌의 고스트 시티인 프리피아트, 홋카이도의 버려진 탄광도시인 유바리시, 독일의 유태인 강제 수용소, 네델란드의 지석묘와 한국의 대전 골령골 보도연맹학살지와 영동군 노근리 쌍굴다리를 직접 영상으로 담았다.

역사의 수레바퀴속에 조용히 희생됐던 이들의 실재하는 아픔이 여러 영상과 사진으로 지나가는 가운데, 동백림 사건에 연루됐던 작곡가 윤이상의 노래 ‘4개의 인벤션 중 글리산디’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불안하면서도 비통하다. 영상의 마지막은 작가가 원폭피해자를 떠올리며 화상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피부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정체도 알 수 없는 권력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위로이자 미안함의 표현이다.

그러나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배척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인간이 탄생한 이래 수만년간 DNA에 내재된 생존본능일 수 있다. 작가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약간의 공간만이라도 주어야한다고 항변했다. “그래도 같이 가야한다. 서로의 존재를 제대로 봐야한다. 위로, 희생 이런 이야기까지 바라지 않는다. 쓰다듬어 줄 순 없을지언정 서로 등 돌리고 살 순 없지 않나.” 

송상희 작가 모습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송상희 작가는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권력에 희생된 피해자의 이야기는 접어둘 예정이다. 대신 권력 자체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려한다. “총괄편을 했다는 느낌이다. 이제는 가해자를 향해 가고싶다. 권력의 구조, 권력 그 자체를 고민하고 싶다. 사람의 본성이 역사가 되고, 역사가 구조가 됐다.”

송상희 작가의 ‘다시 살아나라 아가야’와 ‘세상이 이렇게 종말을 맞이한다 쿵소리 한번없이 흐느낌으로’를 만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는 2018년 2월18일까지 이어진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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