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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연한 이야기]우리사회 어디로?…1987년서 날아온 질문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사망하자 경찰은 거짓 발표를 내놓는다. 단순 쇼크사로 고문을 은폐하려던 경찰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킨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해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이어진 6월 항쟁은 대규모 민주화 운동을 촉발시킨다.

해당 내용을 담아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1987’은 전국 660만 관객을 돌파하며 700만 명을 향해가고 있다. 당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중장년층의 지지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등 정치권에서 관람하면서 더 주목을 받았다. 공연계에서도 비슷한 시기를 바탕으로 한 연극이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연극 ‘더 헬멧’ 룸서울 공연장면 [제공=아이엠컬쳐]

대학로에서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선보여온 지이선 작가, 김태형 연출 콤비가 지난달부터 선보이고 있는 연극 ‘더 헬멧’ 중 ‘룸 서울’ 에피소드는 영화와 같이 1987년을 배경으로 한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사방에서 터지는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대학생 둘이 전경들에게 쫓기다가 서점 지하에 몸을 숨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실험적 형식의 ‘더 헬멧’은 같은 공간 안에서 일어나지만, 벽을 사이에 두고 분리된 무대에서 두 가지 이야기가 따로 벌어진다. 극이 벌어지는 중간 무대 사이에 벽이 쳐지며 ‘빅 룸’과 ‘스몰 룸’으로 나뉘기 때문. 내가 속한 방에서 진행되는 극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지만, 벽 너머에서 흐르는 또 다른 극의 내용은 간혹 들리는 소리와 그림자 등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다.

‘빅 룸’에서는 지하 비밀의 방에 시위하던 학생들을 숨겨준 서점 주인에게 이른바 ‘백골단’이 찾아오면서 생기는 상황이 펼쳐진다. 사복 차림에 하얀 헬멧을 쓰고 시위를 무력 진압하는 백골단은 주인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다. 동시에 건너편 스몰 룸에서는 몸을 숨긴 두 학생이 대학교에 들어와 공부와 미팅, 여행이 아닌 시위와 투신, 분신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토로한다.

극을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더 헬멧’은 매우 협소한 공간에서 진행된다. 빅 룸에 80석, 스몰 룸에 40석 남짓 앉은 소규모의 관객들은 손을 뻗으면 배우의 몸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1987년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 작품은 학생이 공부를 하고 경찰이 나쁜 놈을 잡고, 소주병이 화염병으로 쓰이지 않는 등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지난날에 대한 분노와 반성을 일으킨다.

영화 ‘1987’과 연극 ‘더 헬멧’은 보고 나면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워진다. 1987년 여름 민주화 항쟁 때도 2016년 겨울 촛불 집회 때도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나’라는 의문도 있었지만, 국민들은 변화를 목도했다.

두 작품은 촛불 집회 이후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1987년에서 날아온 질문을 담고 있는 건 아닐까.

뉴스컬처=양승희 기자/ya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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