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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 D-한달 ①] [르포] 재래시장 상인들 “설 대목? 옛날 얘기지 뭐…”
-설 한달 앞두고 공덕ㆍ용문시장 가보니…
-아직 한산한 분위기…고령층 손님 대부분
-“이젠 설이 와도 손님 예전의 반밖에 안와”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미역 다 가져가. 남은거 떨이로 줄게. 어차피 장사 안돼서 팔리지도 않아.”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공덕시장. 이예준(81ㆍ여) 씨는 비닐봉투로 물기가 바싹 마른 미역 줄기를 한 웅큼 집었다. 바스락거리는 봉투를 단단히 묶어 단골손님에게 건넸다. 그녀가 받은 돈은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지폐 한장. 그래도 한기가 서린 그녀의 양빰이 올라가며 미소가 무르익었다.

“고마워 진짜로….”

이 씨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단골손님의 옷깃을 잡으며 배웅한다.

지난 15일 찾은 서울 마포구 공덕시장. ‘설 대목’이 아직 한달이나 남아 있어서 그런지 한산한 분위기였다. 시장 상인들은 설이 와도 옛날만큼 못하다며 그래도 단골손님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사진=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30살 때부터 장사해서 이제 50년 정도 됐어. 10년 전부터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예전의 반도 안와. 그나마 설 때는 조금이라도 팔려. 어쩌겠어. 그저 세월 따라가는 거지. 단골손님들도 정으로 와주는 거지 뭐….”

이 씨는 흐트러진 배추 잎을 정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내 옆에 서있으면 올 손님도 안와. 어서가”라며 손을 내저었다. 말투는 투박했지만, 설익은 정(情)이 묻어난다.

‘설 대목’을 정확히 한달 앞두고 재래시장을 둘러봤다. 설이 한달이나 남았다고는 하지만, 공덕시장은 허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가득 부풀어 오른 패딩을 입은 채 휘적휘적 발걸음을 재촉하는, 많지 않은 행인들 사이에서 상인들의 우렁찬 목소리는 울려퍼졌지만 흥정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어서오세요 김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잡숴봐요.”

“뭐 찾아요? 싸게 드릴게 가져가.”

상인들은 제각각 과일과 채소, 곡물, 각종 수산물 등을 내놓고 한껏 목청을 높였다. 정육점, 떡집, 빵집, 족발집 등 다양한 음식점에선 진한 삶의 냄새가 풍겼지만, 대부분 손님들은 무심코 지나갔다. 

지난 15일 찾은 서울 용산구 용문시장. 한 수산물 매장에서 굴, 조개, 건조코다리 등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같은 날 오후 4시께 서울 용산구 용문시장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뒷짐을 진 50~70대의 장년층, 노년층 손님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들은 매대에 진열된 생선, 채소 등을 두고 흥정을 하고 있었다.

“이거 매생이 하나 1500원에 줘.”

머리가 희끗한 한 손님이 걸걸한 목소리로 운을 떼자 수산물 판매상 한모(42ㆍ여) 씨는 “이거 두개에 1800원에 가져온건데 지금도 싸다”며 맞받아쳤다. 이어 “설이 다가올수록 1000원씩 올라서 나중에 더 비싸진다”며 쐐기를 박는다. 고민을 하던 손님은 검은 봉투에 매생이를 가득 담아갔다.

한 씨는 “설 대목이 언제냐”는 질문에 “장사가 안돼서 대목이랄 게 없지만 설 일주일 전부터 명절에 끓여먹는 매운탕거리가 제법 나가고 굴, 대하. 주꾸미 등도 간간이 팔린다”고 했다.

몇 발자국 떨어진 한 정육점에서는 대구 막창, 한우잡뼈, 사골곰국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홍주(58) 농우축산 사장은 14년 동안 용문시장을 지켜왔지만 “설 대목은 옛날 얘기”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대형마트가 생긴 이후 손님이 10~20% 정도 줄었다”며 “그래도 재래시장만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유도리(융통성)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는 “마트에서 4만~5만원대에 판매하는 한우 사골을 단골 손님들에게는 2만~3만원까지 깎아주기도 한다”며 “재래시장이 운영될 수 있는건 잊지않고 꾸준히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 때문”이라고 했다.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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