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통해 말이 주는 용기 느껴…
160권 달하는 일기가 글의 원천”
“지난 50년을 돌아보면 행복합니다. 시작할 때는 막연히 두렵고 끝까지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결국 이렇게 왔네요. 누가 축하해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 자축하고 싶어요. ”
이해인(72) 수녀는 19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성 분도 은혜의 뜰’에서 열린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샘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수도자로 살아온 지난 50년 세월의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
1968년 5월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들어온 그는 새해에 50주년을 맞는다.
대장암 투병을 한 그는 건강에 관한 질문을 받자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계속 약을 먹긴 하는데, 면역력이 약해져 통풍과 대상포진 같은 후유증이 있어요. 그래서 입원을 해야 했는데, 자신을 가난한 사람과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한 ‘마더 테레사’를 흉내 내 보려고 성모병원이 아니라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6인실을 썼어요. 거기서 사람들이 어떤 걱정을 하며 살고 부부들이 어떤 대화를 하는지많이 듣고 알게 됐죠. 내가 부스럭대고 시끄럽다고 옆에서 ‘아줌마, 가만 좀 있어요’ 하는 구박도 받고 굴욕도 당해봤고요(웃음).”
그는 힘겨웠던 투병 생활에 또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암 투병 9년 동안 단 한 번도 병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았어요. 수술받기 전에 주치의가 보낸 문자메시지가 ‘수녀님, 몸을 크게 수리해서 더 좋은 몸을 가진다고 생각해주세요’ 였는데, 큰 용기를 받았습니다. 당시 병이 깊어 굉장히 걱정하고 있었는데, 힘이 났습니다. 언어가 주는 영향력을 그때 강하게 느꼈어요. 그 뒤로는 나도 사람들에게 아플 때 용기를 주는 말을 많이 해야겠구나 생각했죠. ”
그는 수녀이면서 ‘민들레의 영토’를 비롯한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내 대중적으로 사랑받기도 했다. 끊임없이 아름다운 글을 써내는 작가로서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글은 생각이 나니까 쓰는데, 생활이 별로 복잡하지 않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묵상과 기도를 하며 사는 삶 속에서 160권 가까운 일기랄까, 노트가 있는데, 짬짬이 몇 줄이라도 쓰다 보니까 뭐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사색해서 저금하듯이 생각의 조각들을 노트나 기억 속에 넣었다가 누가 글을 써 달라고 하면 빼서 쓰곤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주변 강의도 줄이고 차분하게 지내면서 수녀원 안의 수녀들을 챙길 생각”이라며 글은 다른 건 없고 영감이 떠오르면 예쁜 그림동화를 써서 내고 싶은 갈망이 있다고 했다.
이윤미 기자/mee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