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이원율의 현장에서] 잇단 자살·사의…박원순 ‘식구’들의 시선
박원순 서울시장이 있는 동안 서울시 공무원 7명이 자살했다. 이 안에서 최소 3명은 목숨을 끊기전에 “일이 힘들다”는 말을 남겼다. 올해에만 서울시 간부급 공무원 2명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들은 ‘박원순표’ 정책들을 주도하던 핵심 간부들로, 조직에서 신망도 두터웠다.

서울시 공무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코 앞으로 온 국정감사와 시의회 예산안 심의는 물론 내년 6ㆍ13 지방선거에 앞서 정신없이 바빠야 할 시기지만 말 그대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탄식의 칼 끝이 박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해도 단지 그 뿐, 분노보단 체념이 지배하는 분위기다.

지난 10일 장혁재 서울시 기획조정실장은 사의를 표명하고 주요 간부에게 “현재 제 자리, 이제 그만두고자 한다”는 고별인사를 전달한 후 연가를 제출했다. 기획조정실은 서울시의 심장부로 취급된다. 사실상 큰 구멍이 생긴 상황으로, 남은 서울시 공무원들의 업무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

장 실장은 지난 달 18일 서울시 공무원 A(28) 씨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7번째 자살자가 된 데 책임을 지기 위해 물러선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A 씨는 올해 1월 예산과로 간 후 격무에 시달렸는데, 간부급 공무원으로서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근 시청 본관에서 열린 이별식에 나온 A 씨 아버지는 “아들은 시청 근처에서 만나 밥을 먹자고 해도 ‘일 때문에 나갈 틈이 없다’는 말을 하던 상태였다”며 “새벽 3~4시에 퇴근하고 오전 8시에 출근하는 직장이면 사람을 죽이는 곳 아니냐”고 울먹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악재들을 지켜보고 있는 다수의 서울시 공무원들은 고개만 떨구었다.

씁쓸한 이별식에서도, 박시장이 직원 정례조례에서 “모든 게 제 잘못”이라며 “지금과 전혀 다른 직장문화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할 때도 고개만 떨구었다. 이별식도, 정례조례도 큰 소란 없이 끝이 났다. 공기는 평소처럼 차분했다.

다수의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부정(否定)의 마지막 단계는 체념이다. 더 이상의 힘이 남아있지 않을 만큼 분노한 이후에는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서울시 공무원들은 그런 상태였다. 이들은 서울시가 최근 추진 중인 ‘핵심 업무에 집중하기 위한 일 버리기’ 사업을 두곤 “버릴 업무를 찾아 보고하는 일이 업무”라며 외면했고, 검토 중인 ‘카톡 업무지시 금지’ 사업에 대해서는 “집에 찾아와서 ‘초인종’ 업무 지시를 하겠다는 말로 들린다”고 냉소했다. 분노하지 않았다. 조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럴 법도 했다.

서울시는 그간 서울시 공무원이 자살할 때마다 나름의 재발방지책을 내놓았다. 효과가 있었다면 그간 비보들은 한참 전에 끊겼어야 했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또 인사 문제로는 이미 지난 6~7월 당시 윤준병 도시교통본부장이 상수도사업본부장으로 가는 과정에서 속앓이를 크게 한 상태였다.

사고가 날 때마다 서울시 공무원이 바라는 건 박 시장의 변화였다.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돋보기로 보듯 진행상황을 하나하나 점검한다는 점, 단순 ‘밀어붙이기’식 추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 등은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거론되는 문제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인사도 단골 불만이었다.

한 서울시 공무원은 이를 다시 지적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번 자살사고 이후 이뤄진 인사에 대해서도 뒷말이 많다”며 “8번째 자살자가 생긴다고 해도, 인사 문제가 다시 발생한다고 해도 이젠 달라지지 않을 것을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화가 나긴커녕 뒤숭숭한 분위기에 익숙해진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박 시장은 대외적으로 광폭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정보원의 일명 ‘박원순 제압 문건’을 두고 자신과 서울시의 이름을 걸고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년 6ㆍ13 지방선거를 의식한 듯 서울시장 3선 도전 가능성도 계속 내비치고 있다.

상당수 서울시 공무원은 이를 보며 또 고개를 떨구고 있다. 크고 작은 사고들로 받은 상처들을 어루만져주기보단 정치적인 행보에 더 집중하는 모습으로 보여 불만은 있지만, 결국 다시 체념하는 분위기다.

체념은 외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외적인 신망이 두텁다고 한들 수년간을 함께 지낸 식구들에게 무시를 당한다면 종착점은 뻔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볼 때, 박 시장은 지금 마음 놓고 대외 활동에 치중할 때가 아닌 듯하다. yul@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