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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형 도시재생]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
- 서울시 첫 네거티브 문화재 역사 재생…명동서 남산까지 보행축 완성
- 중앙정보부6국 자리에 인권침해 역사를 돌아보는 ‘기억6’ 조성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민주화의 승리를 같이 호흡하자고 강요하면 공간은 협소해지고 우리끼리 좋아하고 남들은 거리감을 두는 그런 공간이 되지요.” “우리사회의 한 부분이고, 강물이 쓸려 정상화 된 것처럼 한다면 그 역시 역사에 대한 기만일 것입니다.”

올 상반기 서울시 남산 예장자락 재상사업을 위한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쏟아져 나온 의견들이다.

남산 예장자락은 우리나라 부끄러운 유산이 지층(地層)을 이루는 지역이다. 원래는 조선시대 군사들이 무예를 연습하던 훈련장, 무예장이 있던 ‘예장골’에서 그 이름이 기원한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 1500여명이 진을 치고 왜성을 쌓았다고 해서 왜장터, 왜성대로도 불렸다.

1910년 8월22일 순종의 위임장을 받아낸 이완용과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한일합병의 도장을 찍은 통감관저 터, 즉 경술국치(庚戌國恥)의 현장이 있다. 현재 남산 유스호스텔로 이르는 오솔길(퇴계로 26길)을 따라 오른쪽 소공원에 자리해 있다. 

옛 중앙정보부6국 자리에 조성되는 시민광장 ‘기억6’의 이미지. [사진제공=서울시]

1936년에 우리나라 국권침탈에 앞장 선 일본 외교관 하야시 곤스케 동상이 건립됐는데, 그 판석의 일부가 이 오솔길 느티나무 밑 공원 벤치로 쓰이다가 광복 70주년 되던 2015년에 ‘거꾸로 세운 동상’으로 다시 태어났다.

통감관저는 한일합병 직후부터 29년간 총독관저로 쓰였고, 해방 이후엔 민속박물관(1946년), 임시 국립박물관 남산분관(1953년), 연합참모본부(1954년)로 사용됐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은 이 일대 2만4000평 부지에 건물 41개동을 지어 중앙정보부를 설치했다. 전두환 정권에서 국가안전기획부로 명칭을 바꿔 1995년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하기까지 이 곳은 간첩사건, 학원사찰 등 각종 공안업무를 수행하면서 민주화 인사를 탄압하는 등 인권유린의 대명사였다. 1995년 시 소유로 이관된 다음부터 옛 중앙정보부 5국(대공수사국) 건물은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가, 6국은 시 민생사법경찰단이 입주해 썼다.

5국은 과거 간첩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5국은 복도를 중심으로 5평 남짓한 취조실 10개가 배치돼 있는데, 고문의 강도가 가장 심했던 장소다. 6국은 주로 국내 정치문제와 학원사찰을 담당했다. 2, 3층에서 통상적인 조사를 벌인 뒤 지하층에서 고문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시는 이 지역 근현대사의 오욕의 흔적을 남기면서도 남산의 환경과 경관을 복원하고, 명동 도심부터 남산으로의 보행축을 완성시키는 재생사업을 벌이고 있다. 총 468억원을 들여 내년 말까지 공원조성(1만5154㎡), 관광버스 39면 규모 주차장(8000㎡)과 부대시설(2000㎡) 조성, 보행위주 교통체계 개편 등을 추진한다.

핵심은 중앙정보부 6국 자리를 인권 관련 역사를 기록하는 시민의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애초 전면 철거하려던 계획을 수정, 고문장소 등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부끄러운 역사를 외면하지 말고 기억하는 의미로 ‘기억6’로 이름붙인 광장을 내년 8월 개장을 목표로 조성한다.

기억6은 인권을 주제로 한 빨간 대형 우체통 모양의 전시실(지하1층~지상1층, 면적 160㎡)이 있는 면적 300㎡의 광장이다. 전시실 지하에는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 수사와 고문이 이뤄졌던 취조실(고문실)이 해체 및 재구성되고, 이를 1층 전시실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만든다. 전시실에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우체통을 설치하고, 시민이 넣은 엽서의 내용을 전시 벽면에 표출하는 빔 프로젝터를 운영한다.

광장에는 건물 잔해인 6개 기둥을 남긴다. 각 기둥에는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 반복하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문구가 새겨지고, 그 앞에는 시민들이 앉을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된다.

이 일대에 국치ㆍ인권ㆍ조선의 길을 조성한다. 보도에 역사의 흔적을 알리고 표석도 세운다. 국치의 길 답사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시는 서울로7017, 다시세운(옛 세운상가)과 함께 남산 예장자락이 ‘걷는 도시 서울’의 보행축을 완성, 방문객을 유입시키고 지역경제에도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국 관광객의 남산에 대한 여행경험이 풍부해지는 효과도 기대된다.

진희선 시 도시재생본부장은 “예장자락에는 다양한 역사ㆍ문화 자원이 스며들어 있지만 시민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며 “도시와 자연의 공존을 넘어 역사문화자원으로 연결되는 소통과 공존, 공감의 공간으로 재생돼 방문객들에게 재조명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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