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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험천만’ 벌초 주의보①] “119죠? 조상님이 위험해요”…‘폭군’ 멧돼지가 돌아왔다
-퇴치요청 소방 출동도 가을에만 45.8% 집중
-서울시는 출몰 예방 위해 울타리 설치 추진
-전문가 “정확한 서식 현황부터 파악해야”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추석 명절을 앞 둔 지난 9일 벌초를 하기 위해 조상 묘가 있는 대구 달성군 논공읍의 산을 찾은 자영업자 이모(31) 씨는 깜짝 놀랐다. 묘는 물론 주변 논밭까지 쑥대밭이 돼 있어서다. 발자국과 땅이 파진 정도를 보니 매년 기승이던 두더지의 행태는 아니었다. 이 씨는 “멧돼지의 짓이 분명한데 발자국을 살펴보니 한 둘이 아닌 최소 대여섯마리는 왔다간 것처럼 보여 더 오싹했다”며 “마주칠까 싶어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도망치듯 내려왔다”고 몸서리를 쳤다.

‘멧돼지’의 계절이 돌아왔다. 어떤 환경이든 쑥대밭을 만들 수 있는 포식자가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서면서 등산, 추석맞이 벌초 등을 위해 산을 찾는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하고 있다.

19일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멧돼지를 쫓아내기 위한 전국 소방서의 9~11월 출동 건수는 모두 1513건이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409건), 경기(275건), 경북(146건) 순으로 많고 인천과 세종(각각 4건), 창원(9건) 순으로 적게 나타났다. 하루 평균 16번 꼴로, 해당 기간에만 한 해 전체 출동(3297건)의 45.89%가 이뤄졌던 셈이다. 

가을 번식기를 맞아 멧돼지가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서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사진은 산에서 멧돼지가 나타난 모습. [사진=123RF]

소방청은 올해 9~11월에는 전년보다 더 많은 출동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멧돼지가 기승을 부리기 전인 올해 1~8월 출동 건수로만 봐도 모두 2029건으로, 전년 동기 출동 건수(1507건)를 크게 34.63%(522건) 이상 웃돌고 있어서다. 소방청 관계자는 “멧돼지로 인한 출동은 매 해 서울, 경기 산지 중심으로 계속 늘고 있는 추세”라며 “특히 가을은 짝짓기 대상을 찾느라고 신경도 날카로운 시기로, 소방청 직원들도 긴장을 바짝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가을철을 중심으로 멧돼지 출현빈도가 계속 급증하고 있는 데는 늑대ㆍ호랑이 등 천적 없는 우리나라 자연환경, 종(種) 특유의 높은 번식력과 생존력도 주요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멧돼지의 임신기간은 4~5개월로 비교적 짧지만 1회 7~8마리에서 최대 12~13마리를 낳는 일도 허다하다. 개체 수는 느는 반면 먹이 수는 제한돼 있으니 행동 반경은 점차 넓어진다. 낮은 산지와 심지어는 도심 한복판으로도 내려오는 빈도가 잦아지고, 이에 따라 사람들과 맞딱뜨릴 일도 늘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신남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대형 개발사업으로 인해 이들 생활공간이 좁아지는 것도 주요 원인“이라며 ”멧돼지는 본래 경계심이 많은 동물로, 먹이만 풍부하면 이들이 먼저 서식지를 벗어날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멧돼지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대응책으로는 서식공간 중심으로 울타리를 설치, 움직임을 통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실제로 멧돼지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서울에선 관련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안에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는 5개 지점에 1.5~1.8m 높이 울타리를 전체 3.4㎞ 길이로 설치할 예정”이라며 “현재 각 토지주와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그간 기동포획단을 운영하며, 환경부ㆍ국립공원관리공단과 함께 포획틀을 설치하는 등 방식으로 멧돼지 수를 조절하는 ‘멧돼지는 산으로!’ 프로젝트도 벌였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신 교수는 “아직 시ㆍ도별 멧돼지의 정확한 서식현황도 파악을 못한 상황“이라며 ”먼저 데이터를 도출한 후 이들이 몰려있는 일부 지점을 보호구역으로 지정, 공존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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