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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퇴의 조건①]퇴근 직전 일시키는 부장님ㆍ야근 칭찬하는 선배 있는 한…
-일만 끝나면 일찍 가도 된다면서 업무는 산더미
-칼퇴 대신 ‘정시 퇴근’ 단어 써야한다는 목소리도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 대기업 3년차 한모(31)씨는 퇴근 직전에 일시키는 팀장 때문에 칼퇴를 포기한지 오래됐다. 팀장은 기획안 내용을 ‘조금만’ 수정해달라고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 한 시간이 훌쩍 흘러버린다. 며칠 전에는 야근을 끝내고 가려고 하는 찰나, 팀장이 “밥은 먹어야 하지 않냐”며 저녁만 먹고 가라고 해서 붙잡혔다. 밥만 먹고 헤어지자는 저녁자리는 결국 2차까지 가고서야 끝났다.

#. 올해 봄 한 중견기업에 입사한 이모(27ㆍ여)씨는 계속되는 야근에 비타민과 피로회복제를 달고 산다.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하다고 해서 들어간 회사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업무만 끝나면 자유롭게 퇴근할 수 있다”고 말은 하지만 주어진 일들은 쉽게 끝날 줄을 모른다. 점심시간을 줄여가면서 일을 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볼 때면 회사의 미래는 없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씨는 “자유롭고 효율적인 척 하면서 실상은 어떻게든 일을 더 시키려는 회사에 애사심을 버린지 오래”라고 말했다.


행복한 삶을 위해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직장인들에게 칼퇴는 어려운 과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정부나 일부 기업에서 저녁있는 삶을 보장하겠다고 나섰지만 직장인들에게 칼퇴는 그림의 떡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11~14일 직장인 585명에게 좋은 직장의 조건을 물어본 결과, 절반 이상(50.6%)이 ‘근무시간 보장’을 꼽았다. 우수한 복지제도(34.2%), 일과 사생활의 양립(27.5%) 등이 뒤를 이었다. 그만큼 제 시간에 퇴근하는 회사를 찾는 게 어렵다는 의미다.

예전처럼 야근을 대놓고 강요하는 일은 적어졌지만 칼퇴를 할 수 없는 환경은 여전하다. 대표적인 게 상사가 늦은 시간까지 퇴근하지 않을 경우다. 공무원인 최모(29)씨는 “회사 분위기가 보수적이고 선후배 관계가 수직적이라 상사가 퇴근하지 않았는데 후배가 먼저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먼저 퇴근한 다른 동료를 두고 한 선배가 “저 친구는 눈치가 없다”고 손가락질 하는 것을 보고 칼퇴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 했다. 그는 “칼퇴를 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평판이나 좋은 인사평가를 포기해야 하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회사가 칼퇴를 장려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야근하는 후배를 칭찬하는 경우도 흔하다. 대기업 기획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안모(31ㆍ여)씨는 “일이 끝났으면 퇴근하는 게 당연하고 다음날 업무를 위해서도 더 좋은 일인데, 위에서는 칼퇴를 하면 일을 안하려는 열정없는 직원으로 취급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칼퇴가 불가능한 회사는 직원간 소통이 잘 안되고 업무에 대한 평가도 주관적으로 이뤄지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야근을 강요하거나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지 않는 기업은 좋은 인재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구직자들 사이에선 연봉정보 만큼이나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정보가 주된 관심사다. 취업포털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해당기업이 불필요한 야근을 강요하는지, 야근수당을 제대로 지급하고 있는지 등 기업 문화에 대한 정보가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해당 회사가 일과 삶의 균형을 얼마나 맞출 수 있는지 전ㆍ현직자가 매긴 점수가 공개되기도 한다. 구직자들 사이에선 연봉이 높더라도 불필요한 야근을 강요하는 회사는 가지 않겠다는 목소리도 크다.

여전히 칼퇴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칼퇴’라는 말 대신 ‘정시 퇴근’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회사에 정시에 출근해야 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라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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