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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용적’ vs ‘孝의미 퇴색’…추석 앞둔 ‘벌초대행’ 또 시끌
핵가족화 심화에 바쁜 현대인들
고향 조상묘 직접 돌보기 힘들어
대행업체 작업후 인증샷도 만족
이용객 “기름값 등 따지면 더 저렴”

일부 “조상 모신다는 고유의 의식”
“고생스럽지만 직접 돌봐야”반론도

#.40대 직장인 이원식(가명) 씨는 일주일 내내 어깨와 팔 등 온몸에 근육통이 생겨 고생했다. 지난주 토요일 강원도 고성 선산을 찾아 이틀 동안 6기나 되는 분묘 벌초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무거운 예초기를 메고 산을 오르내리고 평소에 잘 쓰지 않은 근육을 사용하다보니 안 쑤시는 곳이 없었다. 이 씨는 열흘이나 되는 추석연휴를 앞두고 직장에서도 일이 많아져 올해는 힘든 벌초작업을 대행업체에 맡길 작정이었다. 하지만 70대 중반이신 아버지가 “조상을 돌보는 일은 정성이 중요하다. 네가 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예초기를 들겠다”며 반대해 무산됐다.

이 씨는 “나이가 많으신 아버지가 힘든 일을 하도록 할 수 없었다”면서 “요즘 벌초 대행을 많이 이용한다는데, 전문가 손에 맡기면 고생도 안하고 훨씬 깔끔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오가는 시간과 기름값, 밥값 생각하면 훨씬 효율적이다. 내년엔 아버지를 설득해서 업체에 맡길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벌초대행 ‘비포 앤 애프터’ 인증샷.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제공=농협중앙회]

추석이 3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조상 묘를 직접 돌보기 힘든 이들을 위한 벌초 대행서비스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묘소를 관리하는 농촌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데다 핵가족화 심화로 조상의 묘를 직접 돌보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예초기 사고, 벌에 쏘이거나 뱀에 물리는 사고, 낙상 등이 많아진 것도 조상의 묘를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이유 중 하나다. 대행업체에 맡기면 편리한데다 손수 벌초를 하는 것보다 저렴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우세하지만, 전통적인 효의 의미가 퇴색한다는 부정적 시각도 공존한다.

15일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농협의 벌초 대행 서비스인 ‘산소관리 서비스’ 지난해 이용건수는 1만8308기(基)로 전년(1만3180기)보다 39%가 늘었다. 벌초대행이란 말 그대로 고향을 찾아 묘소를 직접 벌초하기 어려운 출향인의 산소와 그 주변을 대신 정리해주는 사업이다. 전국 300여개 지역농협, 산림조합 등에서 이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사설 대행업체도 500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협의 경우 이용료는 1기당 6~10만원이지만 분묘가 있는 지역, 위치, 거리, 봉분 수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벌초 전 분묘 모습과 벌초 후 모습을 찍은 ‘비포 앤 애프터’ 인증샷도 홈페이지에 게시된다.

이용자들의 만족도도 높다.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유모(27) 씨도 벌초 대행업체를 이용하고 있다. 가족이 모두 서울에서 직장을 다녀 제때 벌초하기 힘들고, 모처럼 찾은 묘소는 관리가 안 돼 을씨년스러운 모습까지 보이다보니 업체를 이용해 미리 벌초를 진행하고 차례를 지내기로 한 것이다. 멀리 떨어진 묘소를 돌며 무거운 장비를 챙길 필요도 없고, 명절 당일에 간단히 차례만 지낼 수 있어 가족들도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유 씨는 “벌초를 직접 해야만 효도라는 생각보다는 사정에 맞춰 성묘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며 “조상 묘를 방치하는 불효도 아니고 벌초 이후 업체에서 보내 준 인증샷을 보면 직접 한 것보다 훨씬 말끔하게 정리된다”면서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라도 벌초를 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농협 관계자는 “벌초대행 서비스가 성행하는 것은 달라진 장묘문화나 바쁜 세태를 반영한 결과”라면서 ”직접 벌초를 해도 수십만 원의 비용이 들고 벌초를 위해 오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대행 서비스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반면 벌초대행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이들도 있다. 조상을 돌보는 ‘정성’이 중요한데 돈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 예초기를 새로 구입해 지난 주말에 고향 선산을 찾았다는 김호진(56)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아들과 함께 벌초를 하고 있다”면서 “벌초는 조상을 모신다는 고유의 의식이다. 다른 사람들 손에 맡길 수는 없다”고 했다. 김 씨는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친척들을 만나볼 수 있겠나”며 “벌초라는 전통을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문규ㆍ유오상 기자/mk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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