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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악한 근무환경에…자살충동마저 느끼는 ‘정신보건전문요원’
대부분 20~30대 여성들로 구성
상담 중 언어·신체 폭력에 노출



”정신보건전문요원(이하 전문요원) 한 분이 보통 50~70명의 상담자를 담당하고, 많은 경우 100명이 넘기도 해요. 그렇다보니 그 분들을 한 번씩 만나 뵙는 것도 힘들고 추후 관리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오래 근무해도 호봉조차 제대로 오르지 않은 시간선택제 공무원이란 불안정한 지위가 계속되고, 그렇다보니 전문요원들은 사명감만으로 버틸 수 없어 금방 떠나가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자살위험군에 빠져 있는 상담 대상자들이 받고 있는 꼴입니다.”

세계 자살예방의 날(9월10일)을 앞둔 지난 1일 주상현(38) 서울시정신보건지부 사무장은 본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현실에 대해 털어놓았다. 상담으로 인해 빽빽한 일정을 쪼개 기자와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눈 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근무하고 있는 후배들의 모습을 알리고,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란 것이 주 씨의 설명이다.

실제로 전문요원들의 근무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20~30대 젊은 여성들이 각 센터 요원의 80~9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상담 현장에 출동했다 언어적ㆍ신체적 폭력이나 위협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주 씨는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지만, 인력난이 심각하다보니 홀로 다니며 상시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라며 “담배연기가 가득한 방에 들어가 상담을 진행해야 하는 것은 비일비재하고, 어떤 사람은 전문요원 앞에서 휘발유와 칼, 부탄가스 등을 두고 죽겠다고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실시했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업무 중 재해 및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64%에 이르렀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경우도 76.6%였다.

이 같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전문요원들이 극한의 상황에 내몰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실적 때문이다. 서울시와 각 구청에서 매칭 펀드 형태로 센터를 운영하다보니 몇 가지 사례를 상담하고 있는지 경쟁이 붙고, 이 결과에 대해 서울시 등으로부터 실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양적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비해 인력 충원은 되지 않다보니 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주 씨는 “정신질환자의 수와 상관없이 한 센터 당 인력이 14명으로 한정돼 있는 상황”이라며 “한정된 인력으로 양을 놓고 경쟁하면, 당연히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상황에 기간제와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이란 불안정한 고용구조는 전문요원들의 업무 연속성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2016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서울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종사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3.9년으로 동종업계 평균보다 2년가량 짧았다.

특히,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올해 민간위탁에서 보건소 직영 방식으로 바꾼 일부 자치구에서는 오히려 전문요원들의 근로환경이 열악해지는 경우도 발생했다. 주 씨는 “직영으로 바뀌면서 근로계약서를 새로 작성할 때 구에서 지금까지의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시간선택제임기제 공무원의 가장 낮은 단계로 계약하자고 요구한 사례가 많다”며 “초과근무도 인정되지 않는 등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서울시내 한 센터의 경우 지난해 일하던 전문요원 대부분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감정소모가 많은 자살상담의 특성에다 근무여건까지 최악의 상황이다보니 전문요원들은 오히려 자살충동을 심각하게 느끼기도 한다.

지난해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자살예방사업 실무자의 정신건강 실태분석’에 따르면 ‘최근 1년 이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실무자 156명 중 34명(21.9%)이 ‘그렇다’고 답했다. 일반인(5.2%)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무력감이나 죄책감, 우울감 등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에는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과 고용 안정성 보장을 주장하며 전문요원들은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주 씨는 전문요원들의 직업적 안정성을 높여주는 것만으로도 이 같은 문제를 상당수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 씨는 “현장의 노하우와 스킬이 보존된다면 자살률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는데 예산이 없어 전문인력이 클 수 없는 구조”라며 “고용안정, 전문요원 보호 등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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