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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중수교 25주년⑤] 한중외교, 비선외교에서 정상외교로 성장하기까지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한중 국교화 과정은 한국 외교사에서 ‘비선’, 이른바 비공식적인 행위자를 활용한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한중수교는 1992년에야 이뤄졌지만 그 준비 단계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개최 시기에 선수단을 파견한 것을 계기로 관계 개선을 타진하던 양국은 1990년 우리 정부가 베이징에 민간 무역대표사무소를 개설하면서 공식 수교를 위한 절차를 진행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였다. 한국은 6ㆍ25전쟁 이후 1980년대까지 중국과의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핵심 동맹국인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수교를 맺자 노태우 전 대통령은 한중수교의 필요성을 느끼고 물밑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다. 정치적 민감성과 보안유지의 필요성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비공식 채널과 사적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중국과의 협의를 진행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공식 소통망의 한 축을 차지하는 사람은 바로 박철언 당시 안기부장 특보이자 노 전 대통령의 처조카였다. 안기부의 공식적 움직임 속에서도 박 당시 특보는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홍콩총영사관을 비롯한 여러 정부기관과 연계해 북방정보를 수집하고 중국과의 접촉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철언 당시 특보는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북경에 머물면서 중국 고위층과 막후 접촉을 통해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이렇게 해서 북경과 서울에 각각 무역대표부가 교환ㆍ설치됐다.

중국의 비공식 중개자들도 한 역할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공식 주치의이자 화교 1세대인 한성호 박사는 노 전 대통령의 비밀특사 역할을 했다. 한 박사는 이후 중국인 친구를 통해 홍콩 주재 산둥성 정치협회위원 장시지우(張錫九)를 소개받고, 장춘윈(姜春雲) 당시 산둥성장(전 부총리)과의 비밀접촉을 성사시켰다. 이후 한국 고위공무원들과 중국 당국자들 간의 수교문제가 물꼬를 텄다. 해당 내용은 중국 광저우의 매체인남방일보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과 최종현 SK그룹 명예회장의 관계도 이목을 끈다. 최종현 당시 선경그룹 회장은 한중수교의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선경그룹의 이순석 당시 사장도 최 명예회장과 함께 북경지사를 열기 위해 북경을 오가면서 이후 정부간 비공식 접촉을 적극 도왔다. 이 사장은 북경아시안게임이 열린 1990년 10월을 전후해서 경제교류부터 우선하자는 중국측 입장과 외교적 관계를 희망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각각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2년 이상 지속됐던 비공식접촉 끝에 한국과 중국은 지난 1992년 8월 24일 한국 시간 오전 10시(현지시각 9시) 중국 베이징 국빈관 댜오위타이 팡페이위안에서 한중 수교협약 체결이 이뤄냈다. 양국 외무장관인 이상옥과 첸치천은 공식적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한 첫 순간이었다. 한중 수교식은 별도의 발표없이 10분도 안돼 끝났지만, 짧은 한중수교 체결식을 통해 한중관계는 지난 25년 간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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