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연히 초조했다. 임기 초부터 집값이 상승할 조짐이 보였다. 앞선 정부가 규제를 많이 풀어서다. 내가 홀로 결정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재정경제부ㆍ한국은행이 세금ㆍ금리를 정하면 사실 할 일이 없었다. 주택 정책은 어렵다. 공급은 서서히 움직이는데 수요는 항상 죽 끓듯 한다. 아파트는 사 놓으면 무조건 돈 번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정부가 수 십년 간 심어놓은 ‘부동산 불패 신화’다. 시장에 맡기지 않고 분양가를 누른 결과다. 주택가격 안정이 목표라면 대책은 두 가지다. 수요를 억제하고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나도 집값 오르는 걸 제어하려고 신도시 건설을 결정해 발표했다. 현 정부는 ‘정부과신ㆍ시장불신’이 많은 것 같다. 시장이 작동하지 않으면 규제를 풀어 시장의 힘으로 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도 봐야 하는데, 바로 규제로 들어간다. 집 문제는 지역이 중요하다. 서울에 살고 싶은 사람은 평택에 집이 아무리 많아도 가지 않는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늘려야 한다.”
여기까진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2003년 2월~12월)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과 나눈 대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흘 뒤면 취임 한 달이다. 진보 성향 정부의 초대 주택정책 주무 장관의 처지가 쏙 닮았다. 몸도 제대로 안 풀렸는데 집값 급등세가 어깨를 짓누른다. 5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56%나 오른 노무현 정부에 빗대 현 정부가 ‘노무현 시즌2’가 될 거라는 전망은 14년 세월을 무색케 한다.
‘장관 김현미’의 한 달은 특별했다. 집값 잡을 더 센 정책을 내라는 주문이 쏟아졌다. 서민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상처가 그만큼 넓고 깊다. 인터넷에선 ‘뭘 망설이냐’, ‘지켜보다 또 집값 올리겠네’라는 얘기가 돈다. 김 장관은 집값을 안 잡겠다거나 못 잡는다고 한 적이 없다. 취임 때부터 10여일 간격으로 “과열이 심화하면 추가대책을 내겠다”고 했다. 그제 국회를 찾아선 “청약 시장이 과열되고 집값 불안이 계속된다면 관계 부처와 함께 ‘강력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 즉각 시행하겠다”고도 했다. ‘투기세력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대쪽’같은 메시지를 계속 발신해도 먹히지 않는 분위기다.
장관이 시장을 오판하는 것인가, 시장이 장관을 미덥지 않게 보는 건가. ‘정치인 김현미’같은 잦은 구두개입이 효과를 떨어뜨렸을 수 있다.
최종찬 전 장관은 “정부가 시장에 시그널을 주는 건 필요하다. 다만, ‘저 장관이 하는 얘기는 꼭 믿어야 한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고 했다. 오르는 곳만 올라 배가 아픈데, 속칭 ‘언플(언론플레이)’만 하는 장관이 서민 입장에선 야속할 수 있다. 더구나 주택정책의 핵심키를 국토부 장관만 쥐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시장은 안다. 공급확대가 긴요하다는 이구동성도 새겨야 한다.
김대중 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국토부 장관 자리엔 16명이 거쳐갔다. 이들의 평균 임기는 14.2개월이다. 소신을 펼치기엔 짧고, 시장 따라잡기에 허덕이다 끝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더 ‘긴 호흡’과 ‘큰 그림’,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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