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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로에 놓인 檢 기획수사②] 무리한 대형 기획수사 반복되는 이유는
-‘환부만 도려내라’ 강조해도 지켜지는 경우 드물어
-성과주의·정치적 독립성 취약…내부서도 비판적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으로 꼽히던 심재륜 전 고검장은 2009년 검찰 동우회 소식지에 ‘수사십결(搜査十訣)’이라는 글을 기고하고 ‘곁가지를 치지 마라’는 조언을 남겨 화제가 됐다. ‘수사가 무작정 장기화되거나 방치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수사는 퇴각할 때 지혜가 더욱 필요하다’는 그의 지론은 지금까지도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가장 최근 퇴임한 김수남 전 총장 등 역대 검찰 수장들도 공식석상에서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를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원칙은 검찰의 대형 기획 수사에선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특히 기업 수사에서는 전방위 압수수색→실무진 구속에 이은 자백→총수 구속 이라는 패턴이 굳어져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대형로펌에서 형사 사건을 다수 수임했던 한 변호사는 “검찰은 조직 문화상 일단 수사에 착수하면 쉽게 빠지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검사가 인지사건을 처리하는 부서에 배치가 됐다면 어떤 식으로든 성과를 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경력관리에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여긴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성과주의는 검찰 정기인사가 1년 단위로 이뤄져 짧은 기간에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특성도 원인이 된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서들을 총괄하는 3차장 자리는 검사장 승진 직전 길목이어서 더욱 단기간 성과에 집착하는 상황에 놓인다.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식 조직 구조로 인해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성이 취약한 점도 원인이다.

‘하명수사’는 곧 ‘표적수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혐의보다 사람을 겨냥해 장기간 수사를 벌였던 대표적인 예가 2015년 포스코 수사다. 당시 이완구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로 인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서 인력들이 대거 투입돼 포스코 경영비리가 수사 선상에 올랐고,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의 구속 여부에도 일찌감치 이목이 쏠렸다. 당시 검찰은 그룹 차원의 비자금 흐름을 정 전 회장과 연결짓지 못했다. 이 때도 중간에 하청업체 일감몰아주기 등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결국 수사의 본류를 건드리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 기소한 사건에서 무죄가 나도 수사 부실보다 ’법원과의 견해차‘때문이라고 여겨 검사의 책임을 덜어주는 관행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사 환경 변화로 인해 검찰의 기획수사 역량 발휘가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 검찰 조서 위주로 재판을 했던 과거와 달리 모든 증거를 법정에서 꺼내는‘공판중심주의’ 강화로 증거물의 효력을 인정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롯데그룹 사건처럼 기업 경영이 세계화되는 점도 증거 확보에 난점으로 작용한다. 검찰은 지난해 수사 과정에서 롯데케미칼이 일본 롯데물산에 부당하게 수수료를 지급한 정황을 포착했지만, 일본 업체 쪽에서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하자 이부분 혐의를 규명하지 못했다.

검찰 내부에선 대검 중수부가 폐지된 점을 기획 수사 역량 약화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대검 중수부는 검찰총장 직속 부서였기 때문에 지휘체계가 단순해 직제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인력을 신속하게 끌어올 수 있었다. 단시간에 수사력을 집중해 성과를 낼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가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아 2013년 검찰 개혁안에 따라 폐지된 이상, 거의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검찰 특별수사단도 대우조선해양 수사가 최종 마무리되면 검찰 간부급 정기인사와 맞물려 기능 변화 내지 조직 축소가 점쳐진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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