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안 대부분 압도적 가결, 의혹 연루자 업무 배제도 촉구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부 블랙리스트’ 관리 의혹 추가조사 등 3개안을 의결하면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참가자들은 양 대법원장을 상대로 법원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 방해 의혹에 관해 입장을 밝히고, 판사회의 상설화를 위한 규칙을 제정하라고 압박했다.
이날 전국에서 모인 대표 법관 100 명은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모여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 조사 △전국 단위 판사회의 상설화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 방해 의혹에 관한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과 관련자들의 사법행정업무 배제 등 3개 요구안을 의결했다.
[사진=양승태 대법원장, 연합뉴스] |
한 참석자에 따르면 의안 대부분이 압도적인 비율로 가결됐고, 막판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을 행정업무에서 배제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반대표가 20여표 가량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아직 공식적인 의사를 전달받지 못했지만, 의결 내용을 받는대로 면밀히 검토할 예정이다. 수용 여부를 떠나 전국에서 모인 대표자들이 앞서 이뤄진 조사 내용을 불신하고 추가조사 방침을 정했다는 그 자체로 양 대법원장의 권위에는 상당한 손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판사들은 회의 직후 “대법원장은 조사보고서에서 확인된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행위에 관해 이를 인정하는지 여부, 구체적인 인적 책임소재 규명 및 문책 계획 등을 포함한 공식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대법원장 명의의 사과를 요구한 셈이다. 회의에서는 좀 더 직설적인 표현을 담자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판사회의 상설화 부분도 구체적 활동범위 등을 정하는 규칙은 자체 소위원회에서 만들고, 대법관회의는 통과만 시키라는 요구하는 등 다소 강경한 입장이 정해졌다.
참석자들은 구체적으로 블랙리스트 관리 흔적이 남았을 수 있는 물증에 대한 직접 조사 방침도 정했다. 임종헌(58·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규진(55·18기)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2016~2017년 사용한 컴퓨터와 하드디스크 등이 대상이다. 만약 실제로 리스트를 관리한 흔적이 나온다면 양 대법원장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될 전망이다. 다만 이날 회의 공보를 담당한 수원지법 송승용(43·사법연수원 29기) 부장판사는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해 “미흡한 부분이 있어 추가로 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완전히 새롭게 조사하는 재조사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당초 안건으로 잡혔던 ‘사법행정권 남용 재발 방지 방안’은 시간 관계상 논의를 마무리짓지 못했다. 블랙리스트 의혹 해소와 판사회의 상설화가 사법개혁 논의를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본다면 이 의제는 상향식 사법개혁안의 본체라고 볼 수 있다. 참가자들은 7월 24일 2차 회의를 추가로 열고 이 주제에 관해 토론을 이어가기로 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해 사실상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축소하는 방안도 여기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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