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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구 교수 “서울로 7017 실망…시멘트 답 안돼”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인 이준구 교수가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화한 ‘서울로 7017’에 대해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솔직히 말해 한 번으로 족하고 다시 찾고 싶지는 않은 그런 산책로였다”며 “보통의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멘트로 가득찬 공간이 잘못된 조경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며 겨우 화를 삭였다.

그는 지난 9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아쉬운, 너무 아쉬운 서울로 7017’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서울역 위를 지나는 고가도로를 시민을 위한 산책로로 바꾸겠다는 서울시의 발표를 듣고 마음이 설레였던 것이 사실”이라며 “나는 꽃밭이나 정원 같은 걸 무척 좋아한다. 서울의 삭막한 시멘트 숲 속에 에메랄드 색으로 빛날 공중 산책로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완공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썼다.


서울로 7017 [사진=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서울로 7017 [사진=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뉴욕 하이라인 파크 [사진=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뉴욕 하이라인 파크 [사진=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이준구 교수가 직접 조성한 꽃밭 [사진=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그는 “그런데 완공이 된 후 신문에 난 사진을 보니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산책로의 모습이 아니었다”며 “시멘트 화분으로 가득찬 산책로의 모습을 보고 나는 속으로 ‘이건 아닌데!’를 외쳤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이 공원에 대해 “그것은 우리를 숨 막히게 만드는 또다른 시멘트의 숲이었을 뿐이었다”며 “신문에 난 사진이 산책로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언제 한 번 꼭 가서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 동안 바쁜 일정으로 하루 이틀 미루다 오늘 드디어 서울역행 지하철에 올랐다”며 말을 이었다.

그는 “서울로 7017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산책로의 모습은 그 사진에서 보던 것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사진에서 보듯, 나무와 풀들이 심어진 시멘트 화분들로 가득찬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 한 번으로 족하고 다시 찾고 싶지는 않은 그런 산책로였다”며 “듣기에는 현상공모까지 해서 이런 산책로의 모습을 선택하게 되었다는데, 그 사람들의 센스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절로 한숨이 나왔다”고 썼다.

이 교수는 “상식선에서 생각해 봐도 시멘트 화분이 답이 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같은데요”라며 “무슨 예술성을 추구했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못생긴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며 유감을 남겼다.

그는 “고가도로를 산책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인근 상인들은 교통 혼잡을 우려하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실행에 옮겼다면 무척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산책로인 셈이다”라며 “비싼 대가를 치르고 만든 산책로라면, 누가 봐도 ‘이걸 만들기 잘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멋지게 만들었어야 하는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서울로 7017은 정원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 요소를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원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우리 일상의 공간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아이디어에 기초해 있는 것 아니냐. 그럼으로써 우리의 삭막한 일상에 자연의 따뜻한 숨결을 불어 넣어준다는 데 정원의 본질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이 교수는 “서울로 7017을 가득 메운 시멘트 화분들을 보고 자연을 떠올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 삭막하기 짝이 없는 길을 걸으면서 아늑한 휴식을 느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라며 “나만 유독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통의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멘트로 가득찬 공간이 잘못된 조경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고 썼다.

그는 “서울로 7017과 자주 대비되는 것이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라며 “철길로 사용되던 부지를 신책로로 바꿨다는 점에서 서울로 7017과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요. 거기 직접 가보신 분도 많겠지만, 이 두 산책로를 비교해 보면 바로 채점표가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신문에 어떤 조경 전문가가 하이라인 파크는 하이라인 파크일 뿐 우리가 그걸 그대로 따올 필요는 없다고 말한 기사가 난 걸 본 게 기억난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라며 “그러나 서울로 7017이 단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고 일침했다.

그는 “문제의 핵심은 그저 다르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독창성을 발휘해 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었다는 데 있는 거다”라며 “여러분들 내가 2009년 뉴욕에서 찍은 하이라인 파크의 모습과 비교해 보십시오. 세 번째, 네 번째 사진이 바로 그것입니다. 세 번째 사진을 보면 살벌하게 보이던 철길이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걸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잘 만들어진 정원이 만들어내는 마력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서울로 7017도 시멘트 화분이 아니라 네 번째 사진에서 보는 것 같은 자연스런 정원의 모습을 기본구도로 선택했어야 한다고 믿는다”며 “하이라인 파크를 본 딴다는 게 아니라, 이것은 산책로로 사용되는 정원의 기본 요건이라고 본다. 시멘트 화분들이 어떤 예술적 가치를 갖는지 몰라도 서민들의 휴식을 위한 산책로라면 서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했다”고 적었다.

그는 “그렇다면 자연스런 흙길에 여러 가지 나무와 꽃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정답일 수밖에 없구요. 내가 서울로 7017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독특한 점은 각각의 화분에 한 가지의 꽃들만 심어져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모르고 있던 꽃 이름을 알게 된 건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꽃들은 여러 가지가 어울려 피어야 제멋이라는 기본이 또 한 번 무시되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라고 썼다.

그는 “마지막 사진은 내 오피스텔 빌딩 옥상에 내가 만든 꽃밭의 모습”이라며 “여러 가지 꽃들이 어울려 피어있는 모습이 아기자기하지 않습니까? 1킬로미터가 넘는다는 서울로 7017의 산책로 오른쪽과 왼쪽이 이와 같은 모습의 꽃길로 이어져 있었다면 얼마나 예뻤을까 혼자 상상해 본다”며 아쉬워했다.

이 교수는 “내가 오늘 찍은 서울로 7017의 사진들을 지인들에게 보내 줬더니 모두가 한숨을 쉬더군요. 어떤 분은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구요. 불행히도 내 생각에는 시간이 약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라며 “나무가 좀 자란다고 흉물스런 시멘트 화분에 갇혀 있는 모습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오래 전에 이 게시판에 광화문 광장의 흉물스런 모습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며 “내 생각에 서울로 7017도 광화문광장에 이은 서울시의 또 하나의 실패작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도대체 미적 센스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일을 맡는 바람에 서울시민의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었을 것들이 날라가 버린 셈”이라며 “이미 많은 예산이 투입된 마당에 또 추가적인 예산을 쓰라고 말하기는 염치가 없다. 그러나 서울로 7017을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려면 그 흉물스런 시멘트 화분을 모두 치워 버려야만 한다. 그런 다음 정겨운 시골길을 떠올리게 하는 예쁜 꽃길로 다시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로 7017에 대한 여론이 악화함에 따라 이 모든 것을 주도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향후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서울로 7017을 조성한 전체적인 콘셉트에 따라 일부 구간이 콘크리트로 조성된 것"이라며 "서울로 7017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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