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개정안…동물 방치 행위는 처벌 못해
-전문가 “과태료부과 등 강제성 있는 규정 마련을”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서울 송파구 일대 재개발 지역에 방치된 진돗개 지은이 가족은 공업용 폐파이프를 집 삼아 살고 있다. 지은이가 낳은 새끼 두 마리는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모두 짧은 쇠사슬에 묶여있어 서로 장난조차 칠 수 없다. 새끼들이 마실 수 있는 물그릇은 없었고, 밥그릇에는 새빨간 고춧가루가 눌어붙은 음식 찌꺼기 위에 하얗게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지은이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묶여 있는 복실이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한 때 쾌적한 아파트에서 살던 반려동물이었던 ‘복실이’는 발정행동을 보였다는 이유로 비닐하우스에 버려졌다. 평소 동물을 길러본 적 없었던 비닐하우스 주인은 복실이를 야외에 묶어뒀다. 복실이는 한 순간에 사람의 따뜻한 손길조차 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 방치된 ‘복실이’. [사진제공=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
이처럼 “개는 원래 야외에서 묶어서 키우는 것”이라는 오랜 인식과 달리 1m 남짓 짧은 줄에 묶여 평생 밖에서 사는 개는 상당한 고통을 겪는다. 무더위에 노출되면 열사병에 걸려 생명을 잃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장사상충이나 혈액기생충을 옮기는 진드기, 벼룩 등에 쉽게 노출돼 질병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물을 주기적으로 갈아주지 않고 염분 농도가 높은 잔반만 계속 줄 경우 신장과 간이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일부 동물단체들은 동물을 직접적으로 때리거나 고문하는 등 물리적 폭력 뿐 아니라 방치하는 행위도 학대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지난달 25일까지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AWARE)’가 스토리펀딩을 진행하며 방치 동물 구호ㆍ보호 활동을 한 결과 방치된 개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원봉사자가 산책을 시켜주자 한껏 들뜬 ‘복실이’. [사진제공=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
공장, 마당, 밭 한가운데 묶여 열악한 환경에 방치된 개들은 기본적인 물이나 사료조차 제공받지 못하고 있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며 ‘정형 행동’을 하는 개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유기견으로 오인돼 유기동물보호소로 보내지거나 식용으로 팔려가는 개들도 있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동물의 생존을 위한 물과 사료를 기본적으로 공급하고 몸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 정상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활동반경제공하는 것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공포됐지만 동물을 방치하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 ‘반쪽짜리’ 개정안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공업용 폐파이프를 집 삼아서 살고있는 진돗개 ‘지은이네‘ 가족. 물도 없이 짧은 줄에 묶여 있다. [사진제공=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
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동물 학대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현행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동물생산업이 기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도박 영리 목적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행위도 금지하고 있다.
동물보호법이 그 동안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지만 여전히 동물에게 사료, 물을 주지 않거나 혹서ㆍ혹한 등의 고통스러운 환경에 방치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한국의 현행 동물보호법 제7조는 동물을 소유한 사람이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운동 휴식 및 수면이 보장되도록 노력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다만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아니하는 행위로 인하여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먹이를 주지 않아 아사 직전이더라도 숨이 붙어있으면 처벌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자원봉사자가 물그릇에 물을 주니 목이 말랐는지 단숨에 물을 들이키는 새끼 강아지. 무거운 쇠사슬도 3m 길이의 와이어 목줄로 갈아줬다. [사진제공=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
이 대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 물과 사료를 제공하지 않아 동물의 신체적 고통을 야기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지만 동물은 고통을 호소하거나 진술할 수 없다”며 “방치 행위에 대한 객관적이고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식으로 최소한의 강제성 있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dod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