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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이상 희망없다 ‘비극의 끝’ 남겨진 가족엔 ‘비극의 시작’
다양한 요인 스스로 ‘극단 선택’
자살유족 당장의 심리·경제압박
사회적 편견 속에 평생고통으로


자살만큼 비극적인 결말은 없다. 자살은 그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해버리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죽음으로 끝이지만,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슬픔의 시작이다. 지난 2015년에만 한국에선 8만여명의 자살 유가족이 생겨났다.

자살 유가족들은 생업 붕괴와 인간관계 단절 등의 사회적 자산의 붕괴는 물론 경제적 압박을 겪는 경우가 많고,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자살유가족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는 일반인의 자살시도보다 4배가량 더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다.

자살 가정 붕괴는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져…국가가 도와야=지난달 26일 헤럴드경제와 만난 김향금(55) 씨는 2010년 12월10일 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집에 홀로 남아있던 남편이 “미안하다”라는 문자 메시지만을 남기고 거실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이다. 수십년간 국내 한 유명 통신사의 건실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던 남편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간 것은 실적압박이었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는 “평소 아부할 줄 모르는 남편은 번번히 승진에서 탈락했다”며 “자살 직전엔 24시간 쉬지 않고 울려오는 회사 문자에 극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받는 모습도 보였다”고 했다.

남편의 죽음은 곧장 경제적인 압박으로 돌아왔다. 대학에 입학한 큰 아들과 대입을 준비 중인 작은 아들의 학비를 대다보니 남편의 죽음으로 받은 보험금도 금방 다 써버리고 거액의 담보대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돈을 갚기 위해 식당 알바, 파출부 생활까지 해야했다. 김 씨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남편의 사망 후 이전과는 달라진 회사의 태도와 시댁 시구들이 보낸 원망의 눈초리였다.

김 씨는 “한 가정에서 남편이 자살로 죽을 경우 가정 경제가 붕괴하고, 아내가 죽을 경우 육아에 문제가 생기는 등 자살유가족이 자립할 수 없다면 가정과 사회에 큰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자살을 예방하는 동시에 자살유가족들이 일어설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살은 유가족에게 평생 마음병”=지난 3일 경기 고양 일산에서 만난 정규환(31) 씨는 누구보다도 밝은 표정을 지닌 건강한 청년이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씻어낼 수 없는 마음 속 상처가 있었다. 12년전 어느 날 누구보다 의지하고 지냈던 누나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누나는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몸을 던져 가족들 곁을 떠났다. 정 씨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던 아버지를 겪으며 서로 의지를 많이 해오다보니 누나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이 너무 컸다”며 “자식을 잃은 충격을 이기지 못한 부모님 역시 1년간 생업을 접었고, 우리 가족은 대화와 웃음을 잃은 채 각자 방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고 설명했다.

정 씨의 아버지 역시 어린 나이에 자신의 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었다. 정 씨는 “아버지는 나처럼 마음을 치유받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그대로 안고 살아가다보니 할아버지를 지키지 못했던 할머니에 대한 원망은 물론 자신의 부인, 자녀들에게까지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 같다”며 “어쩌면 아버지도 자살이란 비극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문구도매업체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정 씨는 실용무용과를 졸업한 ‘춤꾼’이기도 하다. 그는 “틈나는 대로 갈고 닦은 춤 실력을 자살 방지에 보태고 싶다”며 “춤 공연과 강연 등으로 자살 시도자는 물론 유가족들에게 새 희망을 주는 삶을 앞으로 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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