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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나에게 ‘가족’을 달라 했나
바라캇 서울 ‘기묘가족:가장의 부재’전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혈연은 원치 않은 인연이다. 누가 나의 자녀가 될지, 누가 나의 부모가 될지 선택권이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부모-자식, 형제-자매-남매 관계는 때론 그래서 더 비극이다. ‘가족’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전시가 열린다. 전시에 나서는 한국과 벨기에 출신의 젊은 작가 둘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나, 가족이라는 시스템에 대해 공통된 회의를 품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바라캇 서울은 ‘기묘가족: 가장의 부재’전을 개최한다. 벨기에 출신의 작가 알렉스 베르헤스트(32)와 한국의 신진작가 조문기(40)의 2인전이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작가들이나 이들의 시선은 시스템화 된 ‘가족’이 갖는 폭력성과 이로인한 가족 가치의 붕괴에 초첨을 맞췄다. 동시대 작가답게 휴대전화가 작품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도 흥미로운 공통점이다. 

알렉스 베르하르트, The dinner, 인터렉티브 영화 [사진제공=바라캇 서울]

알렉스는 인터렉티브 영화작업을 비롯한 영상작품 10여점을, 조문기는 신작을 포함한 회화 1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장 지하 1층엔 만난 알렉스의 ‘저녁식사(The Dinner)’와 조문기의 ‘상주와 함께’가 서로 마주보는 상태로 걸렸다.

‘저녁식사’는 작가가 지인 가족이 겪은 가장의 죽음을 극화한 작업이다. 집안의 가장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가족이 겪어야 했던 혼란과 슬픔, 분노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를 스크립트화 했고 다시 인터렉티브 영화로 제작했다. 제작기간만 3년이 걸렸다. 화면에는 작가의 아바타인 남성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이 옷만 다르게 입은채 좌우로 배치됐다. 한쪽은 가장이 죽기 전의 가족, 다른 한쪽은 가장이 죽고 난 후의 모습이다. 관람객이 지정된 번호로 전화를 걸면, 화면 속 전화기가 울리고 “누구거야?”라는 대사를 시작으로 극이 열린다. 캐릭터들은 “밥 안먹어?” “죙일 먹고 있으면서” “이 테이블 너무 이쁘다” 등등 대화로 이어지지 않는 독백을 내뱉지만 서사가 이어지는 독특한 경험을 한다.

‘상주와 함께’는 한국의 여느 장례식장의 풍경을 담았다. 슬픔과 애도의 공간에서 이유는 모르나 싸움이 났다. 아마도 형제간의 다툼일텐데,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극악하다. 삿대질과 몸부림에 차려놓은 상은 엎어졌고, 엄마는 이 광경을 아이가 볼까 들쳐 안고 나간다.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소녀는 이 상황에 귀를 닫고 휴대전화 화면에 집중한다. 소녀에게 ‘가족’은 지금 이 장소에 있는 극악한 이들이 아니라 SNS에 있는 1촌 친구들이다. 

조문기, 상주와 함께, [사진제공=바라캇 서울]

묘한 대칭을 이루는 두 작품은 모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한다. 예수를 중심으로 제자들이 떠들던 장면이 겹친다. 두 작가는 성화 차용을 부정하지 않는다. 알렉스는 “나에겐 르네상스가 매력적이다. 카메라 옵스큐라가 회화에 본격적으로 활용되면서 당시 그림은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는 등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현시대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등 IT기술 발달이 현대미술을 바꾸고 있지 않은가”라며 차용의 이유를 밝혔다. 조문기 작가는 좀 더 직접적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교리는 가부장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가족에 대한 규율과 규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두 작가 모두 가족에 대해 ‘적폐’라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가족의 진정한 가치를 재발견 해야할 때라고 강조한다. 알렉스는 “가족이라는 제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현시대에 맞는 가족의 정의를 다시 해야한다”고 했고, 조 작가는 “가족의 순기능은 당연히 존재한다. 이젠 그 범위를 혈연으로만 묶을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고 지적했다. 파에즈 바라캇 바라캇 서울 대표는 “혼란의 시대 가족의 가치는 그 빛을 발한다. 두 젊은 작가는 가족의 어두운면을 통해 우리에게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 질문하고 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가족 모두가 관람하기 좋은 전시”라고 밝혔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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