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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상징 ‘임을 위한 행진곡’…누가 만들었나?
[헤럴드경제=이명수 기자] 9년만에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 할 수 있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 의해 제창할수 없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겠다고 공약을 했기 때문이다.

80년대 이후 집회 등에서 빠지지 않는 대표적 민중가요인 ‘임을 위한 행진곡’은 어떻게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1년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음악인 김종률 등 광주 지역 노래패 15명이 공동으로 만든 노래극(뮤지컬) ‘넋풀이-빛의 결혼식’에 삽입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사진=‘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노래극은 1980년 5월 27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중 전라남도청을 점거하다가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노래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합창으로 쓰이기 위하여 지어졌다.

곡은 김종률이 1981년 5월 광주에 있는 황석영의 자택에서 썼고, 가사는 시민사회 운동가 백기완이 YM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1980년 12월에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지은 장편시 ‘묏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의 일부를 차용해 황석영이 붙였다.

감시를 피해 황석영 자택에서 이동식 카세트 녹음기를 이용해 조악하게 녹음되었던 위 노래극은 1982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현 국립 5·18 민주 묘지)에 합장하면서 영혼결혼식을 거행할 때 처음 공개됐는데, 이 노래는 이후 카세트테이프 복사본, 악보 필사본 및 구전을 통해 노동운동 세력 사이에 이른바 ‘민중가요’로써 빠르게 유포되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대표곡으로서 자리 잡았다.

husn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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