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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웃집과 원치않는 은밀한 동거…‘벽간소음’아세요?
TV·사생활 소리 등 그대로 노출
층간소음보다 체감 피해 더 심해
살인조장 등 심각…사실상 방치


서울 강남구의 한 공동주택에 사는 이순규(27) 씨는 매일 귀마개를 끼고 잔다. 옆집에서 들리는 소음으로 잠들기가 쉽지 않아서다. 텔레비전은 물론 은밀한 사생활 소리도 들리는 통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견디기 힘들 때는 벽을 노크하듯 친 뒤 소리를 낮춰달라고 항의한다. 그러면 상대 또한 벽에 대고 자신도 소음으로 힘드니 같이 배려해야 할 부분이라 짜증만 낼 뿐이다. 이 씨는 “원치 않는 상대와 동거하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벽간소음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이로 인해 연달아 살인극이 일어날 만큼 상황은 심각해지는 중이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주택소음 민원에서 작년 벽간소음 관련 문의는 모두 39건이다. 2014년 25건, 2015년 35건 등 상담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벽간소음이란 윗집, 아랫집 간 생기는 층간소음과 비슷한 개념으로, 옆집 간 발생하는 소음을 말한다. 주로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공동주택에서 일어난다.

작년 9월에는 용산구 서계동에서 벽간소음으로 이웃을 살해하는 일도 발생했다.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한 60대 남성이 칼을 들고 같은 쪽방촌에 사는 남성 얼굴과 어깨 등을 수차례 찔렀다. 당시 경찰은 “피의자는 쪽방촌에 이사온 뒤 벽간소음 문제로 피해자에 앙심을 품어왔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4월에는 또 다른 60대 남성이 문을 세게 닫았다는 이유로 옆집 남성을 살해하기도 했다.

벽간소음은 대개 진동으로 전해지는 층간소음과 달리 옆 벽을 타고 전해지는 만큼 체감 피해는 층간소음 이상이다. 그러나 예방 가능한 법적 장치가 없어 사실상 방치 상태다. 현행 국토교통부의 ‘주택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공동주택의 세대 내 층간 바닥은 ▷경량 충격음 58데시벨(㏈) 이하 ▷중량 충격음 50데시벨 이하가 되게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벽간소음에 대해서는 경계벽 설치 시 지켜야 할 소재 등만 명시되어 있을 뿐, 소음에 대한 기준은 없다.

국토교통부도 매년 피해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관련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공동주택 내 경계벽을 벽돌조로 시공할 때 줄눈(벽돌을 쌓을 때 개개의 벽돌이 접합되는 부분)을 더욱 빈틈없이 채우도록 하는 내용 등의 규정 신설을 검토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벽간소음 대부분은 벽돌조 경계벽의 시공불량이 원인”이라며 “시공이 더욱 꼼꼼히 이뤄지면 상당수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세대 간 소통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결국 소음은 사람과 사람사이 생기는 문제”라며 “공동주택 내 행사, 소모임을 활성화하는 등 방법으로 이웃 간 갈등을 풀 수 있는 소통자리를 지속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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