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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마다 스토리가…라이언갠더 첫 한국전
-갤러리현대 ‘소프트 모더니즘’展

20세기 ‘모더니즘’은 사실 인간 본성에 반하는 운동이다. 사상가들은 개인보다 집단과 사회를 중요시하며, 이를 통해 더 큰 선(善)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성에 호소하는 모더니즘은 세상이 더 나은 곳으로 진보할 수 있다고 외쳤다. 그러나, 모던사회인 21세기에 이같은 레토릭은 작동하지 않는다.

영국의 개념미술 작가인 라이언 갠더(43)의 관심은 이곳에 있다. 100년전 탄생한 모더니즘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는 라이언 갠더의 첫 한국전을 3월 29일부터 개최한다. 전시에는 설치, 미디어, 회화, 조각, 사진, 텍스트 등 30여점이 선보인다. 

원형 또는 반원형의 거울을 팔레트 삼아 작가의 가족, 동료, 친구 또는 지인의 초상을 추상으로 그려냈다.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작가는 셀피(selfie)문화와 나르시즘의 정치성에 주목했다. “모더니즘은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단체, 인류, 공감능력에 집중하는데 모던 사회인 지금은 모두 자기 자신에만 관심이 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이타(selfless)를 외쳤던 모더니즘이 이기적(selfish)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검은 카페트가 깔린 지하 전시장은 작가의 이같은 시선을 그대로 담아냈다. 전면에 가득한 거울, 거울을 활용한 추상적 초상은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현대인을 돌아보게 한다.

“스마트폰이라는 인터페이스가 삶에 스며들어 일상 재현과 나르시시즘, 거짓이 증가하고 SNS에서 ‘좋아요’를 갈망하는 현상까지 나타난다”는 작가의 설명에선 ‘카페인(카카오ㆍ페이스북ㆍ인스타그램을 통칭)피로’에 시달리는 한국사회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전시장 1층에는 작가의 두 딸과 함께한 작업을 통해 현대 교육의 폐해를 꼬집고, 2층에서는 모더니즘과 미술사의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몬드리안의 추상을 연상시키는 그리드가 가득한 나무판은 사실 대리석을 자를 때 받치는 용도로 사용된 것이나, 이곳에서는 작품으로 변했다. 값비싼 대리석이 프레임으로 전락했다. “법칙을 무시할때 진정한 창조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모더니즘이 매력적”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소프트 모더니즘’으로 불렀다.

출품한 작품 모두가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스타일이 다르다. ‘소프트 모더니즘’이라는 작가의 큰 카테고리 안에선 동질성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개별 작품이 모두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작가의 말 처럼 제각각의 개성도 강하다. 갠더는 색맹이자, 휠체어로 이동해야하는 장애를 가졌다.

“라이언 갠더는 2000년 이후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할만한 신진작가로 부상했다. 최근에는 벨기에 돈트-데넨스 뮤지엄(2016), 벤쿠버 현대미술관(2014), 파리 팔레드 도쿄(2012),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2010)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취리히 예술상(2009), 대영제국 4등 훈장 장교(2017)를 수여 받았다. 전시는 5월 7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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