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둥지의 철학자’ 박이문 포항공대 명예교수 별세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둥지의 철학자’로 불리는 원로 철학자이자 시인인 박이문(본명 박인희ㆍ사진) 포항공대 명예교수가 지난 26일 오후 10시에 별세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1930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에서 논문 ‘폴 발레리에 있어서 지성과 현실과의 변증법으로서의 시’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곧바로 이화여대 전임강사로 발탁됐지만, 교수직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나 파리 소르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고인이 쓴 박사 논문이 파리에서 출판됐을 때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 전 도쿄대 총장이 책을 서점에서 접하고 저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놀랐다는 일화가 회자할 정도로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그는 세계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넘어가 남캘리포니아대에서 철학을 공부해 다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평생 철학 연구에 매진하면서 언어학, 예술, 동양사상, 과학, 환경, 문명, 종교 등으로 끊임없이 학문적 관심사를 넓혀 나갔다.

고인은 당대 세계적인 사상가들의 가르침을 배웠지만 어느 한 사상가의 철학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세계관을 ‘둥지의 철학’으로 명명하면서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이라는 건축활동, 그 동기와 건축구조는 새의 둥지 짓기와 같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고인은 평소 저술 활동도 활발히 해 ‘시와 과학’, ‘철학이란 무엇인가’, ‘예술철학’, ‘둥지의 철학’, ‘과학의 도전, 철학의 응전’, ‘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문학 속의 철학’ 등 100여 권의 저작을 남겼다. 저서 중 일부는 독일, 영국, 중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지난해는 고인이 20대 시절인 1950년대 후반 발표한 시부터 최근까지 60여년 동안 남긴 글을 추려 묶은 ‘박이문 인문학 전집’(전 10권)이 출간되기도 했다.

당시 전집을 펴낸 출판사 미다스북스는 고인에 대해 ‘삶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무엇이며 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쉽고 명징한 언어로 인문학 전반을 탐구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전 류종렬 미다스북스 대표를 통해 “철학자의 죽음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며 “나는 그저 이렇게 조용히 지내다가 삶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하나뿐인 나의 아내, 맑고 깊고 시원한 큰 두 눈을 가진 희고 가냘픈 한 마리 학과 같은 아내와 함께”라는 글을 남겼다.

이어 “세상을 사물들과 사건들, 그리고 그것들 간의 물리적·정신적 관계의 총칭으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한편으로는 한없이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의 경이로운 질서가 우리를 황홀케 한다”며 “나는 일찍부터 이런 상반된 감동을 시인으로서 언어에 담아두고 싶어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자로서 그러한 질서를 논리적으로 밝혀내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살아왔다”고 회고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숙 여사와 아들 장욱 씨가 있다.

빈소는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9일 오전 6시 30분이며, 장지는 국립 이천호국원이다. (02)2227-7500

realbighead@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