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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심은 500원 냉동밥”…공시생의 눈물
빵으로 떼우거나 하루 한끼만
흙수저 수험생들 생존법 공유

3년째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 조동철(30) 씨는 길어지는 수험생활에 생활비를 아껴보려 최근 고시원을 옮겼다. 제대로 된 난방조차 불가능한 방이었지만, 조 씨는 가격만 생각해 방을 골랐다. 한 달에 30만원도 안되는 좁은 방에는 앉을 공간조차 없었다. 그러나 조 씨는 이마저도 비싼 방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20인용 게스트하우스에 장기 투숙할 생각까지 했다”며 “요즘에는 5000원짜리 점심밥도 아까워 500원짜리 냉동 볶음밥을 주문해 먹고 있는데 다행히 방이 추워 볶음밥이 상할 일은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불안한 취업상황에 공시생이 늘어나면서 노량진 물가도 덩달아 올라 가난한 공시생들이 살기 힘들어졌다고 분석했다. [헤럴드경제DB]

불안한 취업상황에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늘어나고 있지만, 오히려 ‘공시생’들의 생활은 더욱 열악해졌다. 특히 전국의 공시생들이 몰리는 서울 노량진은 물가가 오르면서 준비생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현상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오지 생존 다큐멘터리를 패러디한 ‘가난 그릴스’를 표방하며 각종 생활비 아끼는 법을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공무원 준비생인 김모(31) 씨는 최근 친한 수험생으로부터 유명 강사의 강의 녹음 파일을 받아 듣고 있다. 인터넷 강의는 이미 여러 수험생이 시간을 나눠 돌려쓴다. 학원에 다니지 않아 자습실을 쓸 수 없는 김 씨는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매일 스터디룸을 예약한다. 김 씨는 “5명이 돈을 나눠 내면 독서실보다도 싸지만, 한 명이라도 빠지면 손해기 때문에 출석률이 아주 높다”며 “도중에 나갈 수도 없어 점심은 안에서 제공하는 식빵을 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절약법이 공시생 사이에 돌고 있다”며 “이제는 절약법이 아니라 ‘가난 그릴스’처럼 생존법이라 할 판이다”ㄹ고 말했다.

생활비를 아끼려 과한 절약법을 쓰는 경우도 있다. 앞서 조 씨처럼 극단적인 식사로 떼우거나, 아예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수험생도 있다. 조 씨는 “아끼기 쉬운 식비부터 아끼게 되는데, 가격만 싸다면 개 사료라도 먹고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취업도 못하고 있는데 부모님께 돈을 타 쓰기에는 염치가 없고, 아르바이트를 하자니 수험 생활이 길어질 것 같아 엄두가 안나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처럼 공시생들의 생활이 열악해진 이유로는 공시생이 늘어나면서 노량진이 과포화 상태가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고시학원 관계자는 “수강생이 늘어나다 보니 고시원조차 잡지 못하는 공시생이 나오고 있다”며 “사람은 늘어나고 노량진은 한계가 있다 보니 물가가 올라 공시생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무원 시험 응시자는 지난해에만 70만명에 육박했다. 같은 해 수능 수험생(60만명)보다도 많다. 정부도 매년 채용 인원수를 늘리고 있지만, 급증하는 지원자 수에 따라가지 못해 매년 경쟁률은 치열해지고 있다.

노량진에서 컵밥 가게를 운영하는 신모(46ㆍ여) 씨는 “요즘에는 컵밥조차 사치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아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젊은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려고 노량진에 왔지만, 이곳에서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것만 같아 측은하다”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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