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도 “선거연령 만19세 한정 부적절” 권고
-일본 등 하향추세…대부분 OECD 만18세 선거권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대표 없이 세금 없다”
미국 보스턴의 조너선 메이 휴 목사의 이 한 마디는 미국 독립전쟁의 상징적 슬로건이 됐다. 모든 시민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 권리를 지키고 그에 걸맞는 의무를 지기 위해 정치적 대표를 뽑고 정부를 구성할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만 18세는 여러 법률에 의해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인정받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대표를 직접 뽑을 권리인 참정권만은 갖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선거연령 18세 하향 조정과 관련, 야권은 1일 소집된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고등학생 이모(18) 군은 최근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거권 연령 하향 논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 군은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이후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나라가 이대로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주말마다 촛불집회에 나가고 있다. 이 군은 “정치에 관심이 생기면서 앞으로 치러질 선거에 한표를 행사하고 싶은데 아직 투표권이 없다는 사실이 속상했다”며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 내게도 선거권이 생기길 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군의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어른들은 이 군에게 “공부나 하지 무슨 투표를 하려고 하느냐”며 나무란다. “아직 제대로 된 판단력이 없는 네가 주변에서 몇마디 주워들은 것으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순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어른들의 지적은 맞는 말일까? 선거권 연령 하향에 반대하는 측은 “대부분 고등학생인 만 18세는 정치적 판단 능력이 없고 부모 등 주변의 정치적 견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나이이므로 독자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해 투표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찬성 측은 “선거 과정에서 가족 간에 서로 영향을 주는 것 자체가 부정적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성인도 정치적 판단과 선택에 있어 가족이나 동료, 대중매체 등으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만 18세가 선거권을 갖지 못하는 근거는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우리 법률 체계 상 만 18세는 이미 여러 법률에 의해 성년, 즉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고 충분한 권리를 누리는 나이에 이른 자로 규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형법상 미성년자는 만 14세로 이 나이가 넘으면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해 자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만 18세인 경우 여느 성인과 똑같은 처벌을 받는다. 민법 상 만 18세가 되면 부모나 미성년후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약혼과 혼인을 할 수 있다. 가정을 꾸리고 가정사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라는 얘기다.
각종 권리와 책임을 규정한 다른 법률에서도 만 18세가 되면 성년이 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만 18세 이상의 남녀는 원할 경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 ‘병역법’ 제8조는 제1국민역 편입연령을 만 18세로 정하고 있다. 현재 병역을 이행하기 위해 일률적으로 신체검사를 받는 나이는 만 20세이지만 본인이 원할 경우 만 18세부터 신체검사를 받고 군대를 갈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유엔의 권고에 따라 이 나이가 되지 않았을 경우 소년병으로 간주해 병역을 이행하거나 참전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만 18세가 되면 근로 조건의 제한없이 원하는 직업을 택해 노동을 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도덕상 또는 보건상 유해하거나 위험한 사업에 사용하지 못하는 연령을 18세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다. 만 18세가 되면 야간근로와 휴일근로에 제한을 받지 않고 광산의 갱내에서도 근로할 수 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근로 소득에 대한 세금을 냄으로써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인 만큼 참정권을 가질 근거가 된다.
이들은 공직자로서 공적 업무도 수행할 수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36조와 ‘공무원임용시험령’ 제16조 제1항은 8급 이하 일반직 공무원과 기능직 공무원의 임용기준을 만 18세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 교정ㆍ보호 직렬은 그 직무 특성상 만 20세 이상으로 기준선을 높여놨을 뿐이다. 만 18세라면 타인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공적인 판단 역시 내릴 수 있을 만큼의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밖에 만 18세라면 운전면허도 딸 수 있고, 자신의 죽음을 상정해 유언이 가능하다.
지난 2013년 국가인권위는 이와 같이 각종 법률에서 만 18세 이상의 국민을 국가와 사회의 형성에 적극 참여시키고 있는 것을 볼 때, “현행 선거권 연령인 19세 이상자로 한정하여 독자적인 인지능력이나 판단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국회의장에게 선거권 연령을 낮출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일부 반대론자는 대부분 고등학생인 만 18세가 선거에 참여하다보면 입시를 위한 공부 시간을 뺏길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현행 선거연령인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모두 학생인 것은 아닐 뿐 아니라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얻고 투표하는 드는 시간이 학업에 지장을 줄 만큼 많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인권위의 판단이다.
세계 각국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만 18세 혹은 그보다 어린 시민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만 18세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국가는 우리나라 뿐이다. 당초 20세 이상에게만 선거권을 줬던 일본조차 지난 2015년 선거권 연령을 만 18세로 낮췄고 새롭게 선거권을 부여받은 이들은 지난 총선에 첫 표를 행사한 바 있다. 이에 반해 아르헨티나는 2012년 선거권 연령을 18세에서 16세로 낮췄고 현행 선거권 하한연령이 18세인 미국, 유럽 등에서도 이를 16세로 하향하는 논의들이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선거권 연령을 하향시켜 가는 것이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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