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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모두의 공정한 대통령이라는 신화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씨가 사실상 소유주인 재단이나 기업을 지원하라고 대기업들에 요청한 것을 국민 ‘모두’를 위한 ‘통치행위’라고 했다. 영화와 방송 콘텐츠를 제작해 보급하는 기업엔 너무 ‘좌편향’이라며 “방향을 바꿔 잘 추진하면 나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던 것도 국익을 위해 했던 일이다. 좌편향 인사를 별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는 행위도 국가 안보를 위해서였을 뿐이다. 그의 말대로 “단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았으며, 모든 일이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추진했던 일”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아마 대부분 진심일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답답한 건 모두를 위했고, 국익을 위했다는데 까면 깔수록 그들만의 ‘사적인’ 이해관계를 위한 것일 뿐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것이다.

사회과학 이론을 들이대지 않아도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에서 모두를 위한 것은 존재하기 어렵다. 가량 ‘예’라고 부르는 것만 해도 그렇다. 전통적으로 예의 기준으로 삼는 ‘삼강오륜’은 신하는 군주를, 자식은 부모를, 부인을 남편을 섬기는 것이 도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되고 봉사하는 존재로 본다는 차원에서 요즘 시대 사고방식에선 납득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박사모’ 시위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군신유의(君臣有義)’란 문구만 해도 그렇다. 군주와 신하 간에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긴데 신하는 군주를 버려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도 잘못한 신하를 군주가 처벌하는 것은 별로 문제 삼지 않는다. 말하자면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되는 관계로 본다. 중립적이지 않은 개념이란 이야기다.

이런 틀에서 사고하는 사람들과 마주하면 늘 불편한 상황이 연출된다. 잘못하고 있는 군주, 문제가 있는 부모, 부정한 남편을 비판하거나 부정하면 “예의 없는 인간”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박근혜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들에게 박사모가 “싸가지 없다”고 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의 대부분 정책도 불평등하긴 마찬가지다. 감세정책은 모두를 위한 것으로 홍보하지만, 대게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에게 훨씬 큰 이익을 준다. 규제완화 정책이라는 것도 규제를 많이 받는 사람들에게 훨씬 큰 혜택이 된다. 모두를 위한 정책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혜택과 무관하게 산다.

특정 문화계 인사를 ‘좌편향’으로 보고 ‘우’쪽으로 이동하기를 원하는 것도 편향적인 생각이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좌와 우는 달라진다. 물론 그런 기준을 정하는 사람은 자신은 ‘중립’이고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편 사람들의 입장에선 편향된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공적’인 것처럼 포장된 수많은 정부 정책들이 어떻게 ‘사적’ 이익에 좌우될 수 있는지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이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할때 현혹되지 않을 국민이 더 많이 생긴 것은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큰 진전이 아닐까 싶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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