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주원규 지음/네오픽션 |
소설의 첫 장면부터 요란하다. 커피숍 탁자가 뒤집어지고 흡연실 유리창이 박살난다. 얻어맞은 남자는 만신창이가 돼 널브러져 있고 난동을 부린 주인공, 주일우는 순순히 수갑을 받는다.
사건은 몇달 전, 크리스마스에 벌어졌다. 임대아파트 지하 물탱크에서 주일우의 쌍둥이 형제 주월우의 사체가 발견된 것. 오래돼 몸이 불은 얼굴은 린치를 당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부검도 없이 화장처리되고 만다. 일우는 경찰서에서 월우의 마지막 통화기록을 알고 싶었지만 거부당하자 비정한 현실에 비정한 대응을 하기로 결심한다. 난동은 월우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일진 패거리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일우가 복수를 위해 선택한 수단이었다. 소년원은 또 다른 폭력을 양산해내는 폭력제조공장이다. 규율이라는 이름으로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잔악무도한 교정 교사 한희상, 월우를 죽음으로 내몬, 폭력에 기생하며 폭력을 키워가는 일진 패거리, 일말의 죄의식조차 없는 냉혈한 고방천 등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변종을 낳으며 더욱 잔인해져간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괴물이 되는 것 뿐이다.
작가는 “한국사회는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모든 국면에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며, “사회라는 이름의 학교, 그 학교로부터 이탈된, 추방된 열외들이 쏟아내는 폭력의 도가니 속에서 우리들은 어느새 괴물이 되어 있는 우리 자신, 우리 사회의 실체와 조우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하루하루 나이를 먹는 것 말고는 확실한 것이 없었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먹을 때보다 굶을 때가 잦았다. 곳곳에 빈둥대는 젊은이들이 상처입은 들개처럼 서로를 물어뜯으며 하루하루를 소모했다. 다압에서 아름다운 것은 언젠가 이 곳을 떠나리라는 희망, 렌막에 가서 사람답게 살아 보겠다는 꿈 뿐이었다.”(‘해방자들’에서)
해방자들/김남중 지음/창비 |
사랑할 권리마저 앗아간 사회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저항자들은 있다. 정부는 저항자들을 캐내 진압하려 하고 자유를 쫒던 시민들은 위기를 맞는다. 작가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폭력과 저항의 가상의 세계를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내지만 섬뜩할 정도로 냉혹하다.
스파링/도선우 지음/문학동네 |
그러던 중 장태주는 애정을 쏟아 기르던 새 ‘알리’를 동급생 오재호에 의해 잃고만다. 무능력해서 남들이 노력해 얻은 것을 받아먹고 사는 주제에 자립하려는 의지도 없는 약한 것들이란 비난을 듣고 , 장태주는 세상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된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면 그래, 그렇다면 제대로 살지 않으면 그만이다.”
위악과 폭력으로 맞서며 소년원에 끌려간 장태주는 소년원 담임의 지도로 권투를 배우게 된다. 모처럼 따스하고 유쾌한 시간을 보낸 장태주는 올림픽 복싱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또 한번 좌절을 겪는다. 연맹 소속 선수에게 유리하게 내려지는 편파 판정 때문에 떨어진 것. 가까스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면 무너뜨리는 사회는 장태주를 괴물로 몰아간다.
“살아가며 저돌적으로 인파이팅한 기억을 갖지 못하면, 언젠가 부딪히게 될 현실의 무게에 놀라 도망만 다니게 될 수도 있거든. 그래선 그 현실을 극복할 수도 없고 스스로를 증명할 수도 없으니까 살아가며 한 번쯤은, 모든 걸 다 걸고 정면승부를 겨뤄봐야 할 필요가 있어.”(222쪽)
현실의 날카로운 직시를 유머로 능란하게 뒤집어 보여주는 도신우의 ‘작가의 말’로 읽어도 좋을 문장이다.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