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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37. 골목ㆍ해변ㆍ시장…바르셀로나서 길을 잃다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아침 바람도 상쾌한 카탈루냐 광장에 들어선다. 어젯밤 조명으로 아름답던 분수는 마치 두터운 화장을 지운 여인처럼 청초한 모습이다. 사진을 찍는 건 좋아하지만 보통 내 사진을 찍지는 않는데, 오늘은 괜히 이 광장에서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싶다. 주위에 있는 십 대의 남학생들에게 카메라를 맡긴다. 사진을 찍고 나서 이야기를 해 보니 이들 역시 프랑스인 관광객이다. 어제 베르땅의 말로는 노동절과 승전기념일 휴가로 프랑스의 오월 초는 짧은 방학이라고 했다. 어른이나 학생들이나 바르셀로나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이다.


카탈루냐 광장의 아름다운 분수들, 비둘기들, 시티투어 버스와 많은 관광객을 지나쳐 람블라스 거리로 접어든다. “람블라(Rambla)”는 “물이 빠진 뒤의 강바닥”이라는 뜻인데,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대로를 뜻하기도 한다. 카날레테스 람블라(Rambla de Canaletes)는 오래된 상수도의 이름을 딴 구역이다. 이 수도의 물을 마시면 바르셀로나에 다시 오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축구팀인 FC바르셀로나가 우승을 하면 팬들이 이곳에 모여 우승을 축하하는 전통이 있는 곳이라서 더욱 유명하다.
람블라스 거리의 아침은 각 국에서 온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하나 건너 하나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는 세련되고 예쁜 각종 기념품들을 팔고 그 사이를 메운 꽃집에서 파는 꽃들이 거리를 수놓고 있다. 이곳은 꽃시장으로 유명하다는 꽃의 람블라(Rambla de les Flors)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보케리아 시장(La Boceria)으로 간다. 워낙 유명한 람블라스 거리에 위치한 재래시장이라 방문객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다. 각종 생과일주스나 튀김만두 비슷한 엠빠나다, 생선, 치즈, 육류, 채소 등 먹을 것은 안 파는 것이 없다. 누구나 튀김이나 과일주스를 하나씩 들고 돌아다닌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눈도 호강하지만 입도 심심하지 않다.
람블라스 거리 양편으로 이어지는 골목도 좋다. 가우디가 후원자인 구엘을 위해 설계했다는 구엘 궁전(Palau Guel)도 그 골목 중 하나에 위치해 있다. 외관만 바라보아도 느껴지는 가우디의 독특한 분위기가 압도한다. 사실 어젯밤 베르땅이 위치를 알려줘서 지나갔던 곳이라 오늘 가보려 했건만 월요일인 오늘은 휴관일이다.


다시 람블라스의 반대편 골목을 거닐다 마주한 레이알 광장(Placa Reial)은 아름다운 옛 건물에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지척의 람블라스 거리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야자수들이 이색적인 풍경을 더한다. 청년이었던 가우디가 설계했다는 아름다운 가로등 아래에서는 젊은이들이 햇빛을 즐기며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람블라스 주변의 얽힌 골목들은 구시가의 중심지와 연결되어 있다. 아름다운 가로등이 매달린 바르셀로나의 유서 깊은 뒷골목을 헤매 다닌다. 정해진 길로 가고 계획된 일정대로 걷는 것보다 샛길로 빠져 조금 헤매고 둘러 가는 것이 더 즐겁다. 몇몇 사람들의 발길만 분주한 좁은 골목 끝에도 기념물이 보이고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람블라스 거리와 그 주변의 구시가는 그 존재만으로 남부 유럽의 경치를 대변한다. 인적 드문 뒷골목에서 길을 잃어도 위축되지 않는 것은 이곳이 유럽의 관광명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전 여행지인 모로코의 메디나 안이었으면 질색을 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길을 잃을 자유’가 있는 여행이 여전히 좋다.


람블라스 거리에서 일직선으로 올 때 보았던 어제의 풍경들, 사람의 동상이나 초상화 그리는 사람들은 거리 뒤편으로 사라지고 람블라스 거리의 중간에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가 헤매다 보니 람블라스 거리의 끝인 항구까지 왔다. 정오를 넘어서 오후로 달려가는 햇살이 따갑다.
람블라스 거리의 그늘로 들어온다. 아까 골목으로 다니다 옆길로 나와 보았을 때도, 지금 정면으로 바다 쪽을 바라볼 때도 처음 왔던 어제는 눈에 뜨이지도 않았던 기념비가 보인다. 바로 콜럼버스의 탑(Mirador de Colon)이다. 기념비 끝에 지중해를 향해 손짓하는 콜럼버스의 동상이 서 있다.


항구에는 요트가 수십 대 정박되어 있고 유람선은 손님을 기다린다. 이 구역은 바다의 람블라(Rambl del Mar)다. 근처 노점에서 햄버거를 사서 아침에 까르푸에서 물과 함께 사서 넣어둔 캔맥주를 꺼내 지중해를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다. 아침에 호스텔을 나와 바닷바람을 쐬며 햄버거와 맥주를 먹는 기분이 소풍 나온 어린아이마냥 좋다.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면 항구에서는 익숙한 일인 듯 갈매기도 물고기도 몰려든다. 아예 벤치 옆에 벌렁 누워 햇빛을 즐기는 여행자도 있다. 바르셀로나의 포르트 벨(Port Vell) 항구에서 혼자 먹는 점심처럼, 어쩌면 그것밖에 안 되는 시시한 일들이 기억 속에 더욱 선명히 남는다.


마레 마그눔(Mare Magnum) 쇼핑몰로 올라가 본다. 햇살에 뜨거워진 체온을 식히며 의류매장을 들락거리다가 대형 쇼핑몰답게 쾌적한 화장실도 이용한다. 쇼핑몰이야 새로울 게 없지만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이층에서 바라다보는 바다와 항구 풍경이 상상하던 바르셀로나 풍경이 아니라서 참신하게 느껴진다.


화창한 날씨, 바닷바람이 좋아 유람선을 타기로 한다. 티켓을 끊고 시간을 항구를 서성대며 시간을 기다린다. 생각해보면 바르셀로나의 이미지란 가우디의 도시라는 것뿐이어서 어제와 오늘 보는 모습들이 흥미로운 것이다. 유람선 제일 앞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콜럼버스 기념비와 주변 건물들이 한 눈이 보인다.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의 건물들과 현대적인 항구, 오가는 여객선들이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이면서 산업도시로 발전해 온 바르셀로나를 설명한다. 오월 지중해의 햇살과 바람은 상쾌하기만 하다.


오늘은 전체적인 바르셀로나를 조망해보고 싶다. 지중해에서 바르셀로나를 바라보았으니 이제 몬주익(Montjuic) 언덕으로 간다. 몬주익은 14세기 말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모여 살던 언덕이다. 지금은 문화공간일 뿐 아니라 바르셀로나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되었다. 가까운 메트로를 타고 푸니쿨라르(Punicular : 등산열차)를 갈아타고 올라간다.
푸니쿨라르에서 내려 케이블카를 갈아탄다. 몬주익이 언덕이라 버스를 타도되고 어느 시점에서 걸어서 올라도 된다지만 오늘은 덥기도 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시내를 내려다보고 싶다. 원래 4명이 기본으로 타야 하지만 사람이 많지 않으니 동행끼리 태워주고 있어서 나는 혼자 타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케이블카 안에서는 바르셀로나를 360도 조망할 수 있다. 발아래 낯선 풍경들이 하나 둘 눈이 익는다.


돌아갈 비행기 티켓의 날짜가 딱 열흘 남았다. 창밖이 훤히 보이는 케이블 카라는 작은 공간에 혼자 앉아 둥실 떠가는 기분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에서 새로 사서 신고 나온 가벼운 트레킹화는 마추픽추에 오를 때만 해도 새 것과 다름없었는데 남미를 거치고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젖고 마르고 구겨지고 찢어지면서 수명을 다하고 있다. 마법의 신발처럼 힘든 길들을 함께 걸어준 신발에게 경의를, 모든 길들을 견뎌준 내 발에게 감사를...


드디어 카탈루냐 지방의 깃발이 휘날리는 몬주익 성이다. 유람선을 타고 돌아본 항구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본다. 오후의 태양이 내리쬐는 도심의 언덕을 돌아다니다가 바다를 바라다보며 다리를 쉰다. 지나가는 사람 몇 명과 단체로 버스 타고 이곳에 들른 사람들이 전부인 언덕, 숲과 산책로와 분수 옆의 쉼터가 반갑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경치는 몬주익 언덕에서 보던 것보다 더 멋지다. 바르셀로나 시내를 조망하면서 내려간다. 케이블카 왼편 저 멀리 여전히 공사 중이라는 가우디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보인다. 산과 바다, 인간의 건축과 삶이 어우러진 바르셀로나가 펼쳐져 있다. 


몬주익 언덕에서 내려와 바르셀로네타(Barcceloneta) 해변으로 간다. 항구와 멀지 않은 작은 해변은 따뜻한 남부의 타리파나 말라가와는 달리 아직 해수욕하는 사람도 없고 관광객도 많지 않다.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친구 거나 연인이거나 가족들이다. 파도와 씨름하고 모래에 넘어지는 아기 때문에 바라보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바르셀로나가 스페인의 동쪽 항구라서 해는 바다로 떨어지지 않는다. 야자수가 바람을 맞고 가로등이 예쁜 공원 같은 해변 풍경을 등지고 낙조를 바라보며 걸음을 옮긴다.


바르셀로네타에서 항구로 가는 해변의 산책로가 좋다. 메트로로는 두 정거장이지만 해변을 따라 걷기로 한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것이 차가워진 바람으로 느껴진다.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하는 현지인들과 산책 나온 여행자들을 바라보며 그저 해변을 걸었을 뿐인데, 콜럼버스 기념비가 있는 항구로 돌아오게 된다. 아침에는 보지 못했던 조각상이 가로등 켜진 거리에서 반긴다.
람블라스 거리를 걸어 아침에 갔던 리세우 광장으로 간다. 햇살로 가득했던 광장의 레스토랑의 테이블은 사람들로 붐빈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학교를 갓 졸업한 가우디가 설계했다는 아름다운 가로등에 불이 켜져 있다. 아침에 사람들이 기대앉아 있던 가로등 밑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해 질 녘의 새파란 하늘과 하얀 불빛만이 거리를 밝힌다.


람블라스 거리의 밤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어제는 눈에 띄지 않던 기념품 가게에서 열쇠고리나 병따개, 냉장고 자석, 인형 같은 선물용 소품들을 기웃거리게 된다. 가로등마저 아름다운 곳, 시시각각 바뀌는 분수의 색깔처럼 다양한 바르셀로나의 매력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밤이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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