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계는 ‘보수의 혁신’을 내걸고 친박계를 겨냥한 인적 청산을 줄곧 주장해왔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친박계 입장에 승복해왔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도 지난달 23일 “탄핵에 앞장서겠다고”고 했지만 8일만에 사실상 입장을 뒤집었다.
[사진설명=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비공개 회동을 마치고 메모지를 들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
새누리당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통해 ‘내년 4월 퇴진, 6월 대선’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의총 후 이같이 밝히며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 전원의 만장일치 박수로 당론을 채택했다”고 했다. 정 원내대표는 ▷안정적인 정권 이양 ▷최소한의 대통령 선거 준비 기간 확보▷탄핵 심판의 종료 시점과 비슷 등의 이유로 이같은 일정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당내 비박계ㆍ비주류 모임도 의총의 결론을 따르기로 했다. 비상시국회의 간사인 황영철 의원은 이날 의총에 참석한 후 “당론에 뜻같이 한다”고 밝혔다. 황 의원은 ‘4월 퇴진’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입장을 밝히고, 여야가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가지 모두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오는 9일 탄핵 표결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사퇴 시점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면 여야 협상이 이뤄지지 않아도 ‘탄핵 참여’ 방침은 다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비상시국회의 차원의 조직적 탄핵 참여 방침은 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주류는 ‘탄핵’ 대신 ‘4월 퇴진’을 택한 주된 이유로 정 원내대표 말처럼 이 시점이 탄핵 종료와 비슷하거나 빠를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비상시국회의 내에서도 강경파로 꼽혔던 하태경 의원도 내년 4월 퇴진론에 힘을 실었다. 하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이 탄핵보다 더 빨리 물러날 길을 열었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걷어차 버리는 야당은 민심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라며 “혹여 대통령이 4월말 이내로 퇴진 일정을 정해주면 탄핵보다 일정이 길지 않기 때문에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명분을 내세웠지만, 정치적으로는 비박계가 탈당ㆍ분당을 감행하며 소수파가 되기보다는 새누리당에 남아 친박과 동거하는 편을 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박 대통령 담화 전까지 친ㆍ비박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탄핵참여’는 새누리당 분당의 분수령으로 꼽혔다. 그러나 비박계는 내전을 확대하기 보다는 봉합을 택함으로써 다수 여당으로서 향후 정계개편에서 유리한 입지를 유지하겠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분위기는 지난달 22일 남경필 경기 지사와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의 탈당 이후 원내에서 탈당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부터 감지됐다. 남 지사와 김 의원은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후에도 ‘탄핵 우선’ 입장을 강경하게 주장해 새누리당 비주류 의원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한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향후 탄핵 부결시 비박계에 정치적 책임을 따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비박계에 대한 민심의 향방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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