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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귀찮아…일상이 비상상황” 비상식량 사들이는 미국인들
지난 8일 치러진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서는 비상식량 판매가 급격히 늘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비상식품 판매 업체 레거시푸드스토리지(Legacy Food Storage)는 대선을 하루 앞두고 판매량이 3배까지 증가했다. 어느 때보다 극심한 갈등 속에 선거가 치러져 자신이 반대하는 후보가 당선될 경우 비상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대선은 결국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승리로 돌아갔다. 미국 곳곳에서 그의 당선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비상식량을 사용해야 할만한 비상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비상식량을 산 사람들은 그저 쓸데없이 과민했던 탓에 헛 돈만 쓴 것일까? 



사람들의 공포에 기반한 마케팅, 경제가 추락할 때 오히려 활황이 되는 산업. 이러한 비상식량 업계가 변화를 시도해 신규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최근 WSJ가 보도했다. 과거보다 개선된 저장기술로 인해 유통기한이 길어졌고, 굳이 비상사태까지 일어나지는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응급상황을 가정해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업체들은 또 글루텐프리, 유기농식, 건조 그릭요거트, 과일 스낵 등 새로운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 고객 저변을 넓히고 있다.

레거시푸드스토리지에는 유통기한이 무려 25년에 달하는 비상식량 제품이 있다. 우리 돈으로 33만원 정도하는 34파운드(15.4㎏) 패키지가 가장 많이 팔리는 데, 파스타와 채식주의자를 위한 치킨알라킹(닭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수프) 등으로 구성돼 있다. 회사는 또 좁은 주거공간에 사는 도시민들을 위해 작은 크기의 패키지도 내놓았다.

오거슨팜스(Augason Farms)라는 비상식량 브랜드를 갖고 있는 업체 ‘블루칩’ 역시 과거에는 기껏해야 캠핑족을 노린 제품을 내놓는데 그쳤지만 지금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회사의 알리슨 씨는 “장기 상온 보관 가능한 식품은 매일매일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군대 납품용 비상식량 업체 마운틴하우스(Mountain House)의 마케팅 코디네이터 케니 라슨은 “좀비가 나타나는 대재앙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지만 폭설에 갇혀 식료품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는 있다”라고 했다. 굳이 전쟁 같은 재난 상황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밖에 나가기 귀찮다거나, 갑작스레 손님이 찾아왔다거나 하는 일상적인 비상상황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 역시 비상식량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적극 이용하기 시작했다. 데빈 스프라트(30) 씨는 과거에는 배낭여행 때나 비상식량을 이용하곤 했지만 지금은 자주 이용할 수 있는 간편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대단한 고급 음식이나 집밥은 될 수 없지만, 치리어스(Cheeriosㆍ시리얼 브랜드) 수준도 아니다”라고 했다.

물론 비상식량을 일상식으로 이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생존을 위한 상황을 가정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칼로리와 염도가 높다는 것이다. 또 한해 시장 규모 5000억 달러가 넘는 미국 식품 시장에서 잘해야 고작 3억 달러 규모만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소수의 흐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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