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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 시민이 탐정을 그리워하는 까닭은 - 김종식(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세계적으로 탐정업(민간조사업)이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초기에는 개인의 행적이나 평판 등 사적영역을 탐문하거나 관찰하는 일을 주로 해왔으나, 오늘날 사설탐정(민간조사원)은 도피자나 실종자찾기, 소송에 필요한 증거수집, 국내외은닉재산추적 등 피해구제에 중점을 두는 한편 국민 다수에게 피해를 안겨주는 부정ㆍ부패와 같은 공익침해행위를 고발하는 대중적 측면의 일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특히 대개의 나라에서는 국가적 쟁점이나 사회적 혼란이 있을 때 국가기관이 탐정에게 특정정보의 수집을 의뢰하기도 한다. 이는 정형화된(관료주의적) 수사기관이나 민정기능의 편향성과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한 스스로의 보완책일 뿐만 아니라, 탐정(민간)의 전문성과 문제의식이 결코 공조직에 뒤지지 않음을 시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에 탐정이 공적(公的)차원에서 활용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시민이 탐정에 환호하는 까닭을 음미해 보고자 한다. 


1998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그의 여비서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특별검사 케네스 스타도 검찰이나 경찰이 아닌 사설탐정에게 불륜 의혹을 뒷받침할 결정적 단서 수집을 의뢰하여 얻은 “내밀한 물증”을 클린턴에 대한 탄핵 소추에 활용했다는 얘기는 탐정의 역량이 경우에 따라 수사기관을 능가하거나 높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음을 대변해 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또한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1986년까지 21년간 필리핀을 통치하는 동안 민주시민에 대한 탄압과 부패로 권좌에서 쫓겨난 마르코스 대통령이 은닉한 비자금의 존재를 추적한 필리핀 정부는 국내 수사ㆍ정보역량만으로는 파악이 어려웠다. 궁리 끝에 스위스 금융계로 몰려드는 은밀한 돈의 흐름을 꿰뚫고 있던 호주의 한 금융전문 공인탐정에게 분석을 의뢰하여, 이로 부터 얻은 정보가 결정적 단서가 되어 스위스 은행에 숨겨둔 16조원 규모의 비자금이 세상에 알려졌다는 일화는 탐정의 전문성과 유용성을 세계에 입증한 일이었으며, 1500~1800년대 영국은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이 지속된 가운데 치안대처능력 부족이 큰 문제로 제기되자 만연해 있던 기존 보안관의 무능과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지역별로 한시적인 치안판사직을 신설하였는데, 1748년 런던 보스트리트의 치안판사로 임명된 H.필딩 법관은 ‘보스트리트러너’라는 소수의 정예 탐정조직을 만들어 보안관과 관련된 각종 범죄의 첩보 및 증거를 수집, 이를 통해 공직사회를 정화하고 민생을 안정시킨 역사도 있다.

우리나라 예금보험공사에서도 저축은행 등 금융사를 파산시킨 주범들의 해외은닉재산을 찾아내기 위해 2007년부터 8년동안 140회에 걸쳐 외국의 사설탐정을 고용, 이들에게 7만6357달러(8900만원)를 지급하고 5.900만달러(689억원) 규모의 은닉재산을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1억원이 채 안되는 비용으로 689억원이라는 거액의 은닉재산을 추적해낸 셈이다.

 이렇듯 사회의 고질적 병폐 척결에 “사립탐정의 눈과 귀”까지 활용해 온 각국의 간절함과 유연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기강 확립을 위해 감사, 감찰, 수사, 정보, 민정기관 등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복잡ㆍ다양한 사회구조 속에서 공식적인 시스템만으로 적폐(積弊)를 직감하거나 추적해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우리는 새삼 통감하고 있다.

선진국 클럽인 OECD 35개 회원국 중 탐정업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우리도 탐정의 역할을 슬기롭게 활용할 공인탐정법(민간조사업법) 제정이 절실함을 다시금 느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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