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제각각 마음속의 심연(心淵)의 깊이는 어느정도 일까. 설치작가 김승영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深淵)을 제시했다. ‘자기합리화’, ‘과거와 현재’, ‘절망’ 등 다양한 감정이 섞여있는 그곳은 빛마저도 삼켜버린 검은 물만 출렁인다. 작가가 만든 심연(心淵)은 우물의 형상이다. 속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 물은, 물을 길어올리듯 우물로 늘어뜨려진 쇠사슬의 오르내림에 끊임없이 출렁인다. 작가는 억압, 속박의 상징인 ‘쇠사슬’이 한없이 유연한 ‘물’과 만나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표현했다. 작품명은 ‘리플렉션(Reflection)’이다.
김승영_Reflection_디테일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
사비나미술관(관장 이명옥)은 올해 마지막 전시로 김승영작가의 개인전 ‘리플렉션(Reflection)’을 연다. 김승영은 1990년대부터 물, 이끼, 숯 돌, 낙엽 등을 비롯한 자연물과 빛, 사운드, 기계장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설치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는 이전까지 정체성과 기억에 집중했던 작업에서 벗어나 다시 인간만이 느낄수 있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음속 깊은 곳 숨겨놨던 감정이 도르래 사슬을 타고 2층으로 올라오면, 구치소 수감방 같은 방에 어지러히 쌓인다. 철창안에 쌓인 감정의 더미는 죄수처럼 철창에 갇혔지만 동시에 금괴처럼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벽은 공간을 나누는 역할도 하지만 내 감정의 보호막이기도 하다”며 철창의 의미를 설명했다.
김승영_Reflection_글자가새겨진 고벽돌, 물, 철, 모터장치_가변크기_2016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
‘집착’, ‘야심’, ‘외로움’, ‘끌림’, ‘행복’ 등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은 깨지고 부서지고 엉킨채 관객을 맞이한다. 사실 이런 감정은 ‘사랑’의 다른 조각들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안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막강한 에너지의 결정체인 사랑은 동시에 파괴적이기도 하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감정 더미에 피어나는 이끼와 풀꽃은 사랑의 따뜻한 측면을 상징한다.
김승영_Reflection_글자가새겨진 고벽돌, 물, 철, 모터장치_가변크기_2016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
전시는 지하로도 이어진다. 지하로 연결된 계단을 내려가는 관객은 벽돌로 막힌 돌과 맞딱뜨린다. 깨진 벽돌 틈으로 보이는 공간에는 표면이 거친 마루가 깔려 있고, 이따금 무언가를 쓸어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작가가 해인사에서 수집한 비질 소리다. 벽돌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비질소리가 마음속 감정의 잔해를 ‘쓸어’버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전시장을 돌며 설명을 이어가던 작가는 루이스 부르조아의 말 ‘나는 감정의 죄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만 하고, 잊어야만 하고, 용서해야만 한다.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을 인용하며 “어느 시대나 치유는 필요하다. 나의 작업 역시 타자와의 소통방식이자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달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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