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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97일 대장정 ‘희망’서 ‘공포’로… 美 10명 중 6명“더 분열될 것”
“2008ㆍ2012년 선거에서 많은 유권자들을 움직인 키워드는 ‘희망’이었다. 2016년에는 ‘공포’가 그것을 대체했다.” 미국 시사잡지 애틀란틱은 올해 미 대선에 대해 이같이 총평했다. 미국 국민 2명 중 1명은 ‘대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하고, 공포지수가 급등한 주식시장은 출렁였다.

1년 6개월 여에 걸친 대선 대장정의 마지막 국면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이처럼 음산했다.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후보들 중 누군가 덜 나쁜 후보를 뽑아야만 하는 선택의 순간은 유권자들에게 당혹감을 안겼다.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함께하면 강하다(Stronger Together)”나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선거 구호는 현실을 배반하는 공허한 말이 됐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미국인들은 함께하기에는 너무 큰 생각의 간극을 확인했고, 미국 정치는 위대해지기 보다는 세계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뉴욕타임스 사설).

▶“평범한 서민의 대변인” vs “부패한 사기꾼”…힐러리의 이중생활= 이번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해 4월로 시간을 되돌려 보면, 당시 힐러리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챔피언이 되고 싶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중산층 및 서민 노동자와 흑인, 히스패닉, 동성애자 등 소수자를 대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실제 힐러리는 부자 증세와 금융 규제,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국내 테러 해법으로 이민자 추방보다는 총기 규제를 약속했다.

그러나 그의 과거 행적들은 그가 뱉은 말과는 전혀 달랐다. 힐러리가 한 회 수억원의 강연료를 받고 월가에서 금융기관에 우호적인 강연을 했으며, 남편과 함께 세운 자선단체 ‘클린턴 재단’은 자선활동을 명목으로 기부금을 걷어 영리활동을 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대선 종반까지 힐러리의 발목을 잡은 ‘이메일 스캔들’도 자신은 사이버보안 절차를 따르지 않겠다는 특권의식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해석됐다.

▶“아웃사이더” vs “아마추어 망발꾼”…트럼프의 민낯= 힐러리보다 두 달 늦게 대선판에 뛰어든 트럼프는 처음에는 재력과 기행으로만 주목받는 주류 정치의 ‘아웃사이더’ 후보였다. 하지만 그는 경제 위기와 양극화로 상실감에 빠진 저학력 백인 노동계급의 지지에 힘입어 금세 공화당을 집어삼켜버렸다. 단순화된 표현으로 적과 아군을 규정짓는 그의 화법은 기성정치에 신물이 났거나, 가난과 실직에 절망했거나, 테러 공포에 떤 이들을 매료시켰다. 누군가는 그를 ‘망발꾼’이라 비판하지만, 그 거친 망발이 곧 그를 이 자리에 오게 한 힘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가 ‘참신한 신인’이 아닌 정치ㆍ외교ㆍ경제 등 여러 방면에 ‘문외한(아마추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1년 넘게 트럼프의 레이스를 봐왔지만 아직도 그가 하겠다는 공약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조세정책은 부자 감세, 노동정책은 반(反)이민, 무역정책은 보호무역, 외교정책은 고립주의 등의 추상적 방향만 있을 뿐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알맹이가 없다.

현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짚고 기층 민중 사이에 흐르는 분노와 불만을 양지로 드러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를 정제된 형태로 다듬고 실현가능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상처는 아물 수 있을까…미국인 10명 중 6명은 “더 분열될 것”= ‘사기꾼’과 ‘망발꾼’이 수개월간 벌인 진흙탕 싸움은 미국 정치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양측의 네거티브 공세는 상대를 공존해야 할 동반자가 아닌 적(敵)으로 규정함으로써 분열을 더욱 심화시켰다. 대선 레이스 중에 종종 벌어진 폭력 사건들이나, 상대 후보가 당선되면 이민가겠다고 공언하는 유권자들이 많다는 보도는 이를 방증한다.

실제 뉴욕타임스(NYT)와 CBS방송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가 이번 선거에 신물이 난다며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으며, 힐러리가 사회통합을 끌어 낼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0%, 트럼프에 대해선 이보다 낮은 34%에 그쳤다. NBC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23%만이 새 대통령이 미국을 통합시킬 것이라고 답했을 뿐, 64%는 미국을 오히려 더 분열시킬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블룸버그통신의 최근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투표의향이 있는 유권자 중 58%가 대선결과에 실망을 하거나, 심지어 화가 날 것이라고 했다. 또 지자하는 후보가 진다면 계속해서 싸울 것이라고도 했다. 정치가 잠재해 있던 갈등을 드러내고 다시 봉합하는 과정이라면, 이번 대선은 환부를 열어만 놓고 봉합은 못한 반쪽짜리였다. 대선 이후 ‘통합’이라는 더 큰 숙제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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