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라이프칼럼] 입동과 나목, 그리고 대한민국
벌써 절기상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7일)이 지났다. 이미 이달 초 강원 산골에는 이틀간 아침 최저 영하 7도까지 내려가는 반짝 추위가 찾아왔었다. 상강(10월 23일) 이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푸른 기운을 잃어가던 풀들은 아예 누렇게 변색된 채 드러누워 버렸다. 집 앞 뽕나무의 무성한 잎사귀들도 거의 다 떨어졌다.

밭에는 미처 거두지 못한 대파와 쪽파들이 간신히 몸을 가눈 채 버티고 있다. 가을수확을 끝내고 절기상 입동과 소설(22일)이 들어있는 11월은 이렇듯 황량한 계절이요. 자연이 적나라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시기다.

“시골 땅은 수확이 끝나고 낙엽이 진 겨울에 보라”는 말이 있다. 산과 들의 나무는 낙엽을 땅에 떨구고, 풀도 누워버린 상태이기에 그만큼 특정 지역이나 마을, 개별 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야의 경우 그 지세와 지형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개간해서 쓸 수 있는 땅과 그렇지 못한 땅에 대한 구별이 가능해진다. 밭의 경우에도 농작물에 가려졌던 진짜 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소위 땅의 ‘S라인’과 ‘민낯’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 때 마음에 드는 땅 이라면 푸른 잎사귀와 화려한 꽃들로 치장되는 봄과 여름, 가을에는 말할 것도 없다.

이맘 때 벌거벗은 자신을 드러낸 채 다가올 한겨울의 시련을 준비하고 있는 나목은 보기에도 안쓰럽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무의 순수함과 진실함, 그리고 새로운 희망이 느껴진다. 꽃과 잎을 틔우지 못하는 ‘고목’이 아니라 기나긴 겨울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극복하고 다시 새싹을 틔울 봄날을 기다리는 ‘나목’이기 때문이다.

입동 전후 나무가 스스로 떨구어내는 낙엽은 땅에 떨어진 뒤 흙으로 돌아간다. 흙이 된 낙엽은 다시 나무의 일부가 되니 낙엽은 곧 숲의 시작이다.

자연의 순리대로라면 나무는 입동 전후 자신의 잎사귀를 떨구고 순수함과 진실함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새봄을 준비한다. 만약 이런 순리를 거역한 나무와 잎사귀가 있다면 그건 ‘미혹의 잎사귀’요, ‘미혹의 나무’일 것이다.

사전적으로 미혹(迷惑)이란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나, 정신이 헷갈리어 갈팡질팡 헤맴을 의미한다. 불교적으로는 마음이 무명에 가려져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사리에 어두운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는 속임을 당해 진리의 길에서 떠나 죄악 가운데 헤매고 방황하는 것을 가리킨다.

요즘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최순실 국정개입 사태’에 따른 헌정중단의 위기가 눈앞에 닥쳐있다. 그동안 대한민국이란 나무를 장식해온 잎사귀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그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이 혼돈의 상황을 더욱 혼돈으로 몰아넣는 미혹이 판을 치고 있다. 미혹의 잎사귀를 떨구지 않은 미혹의 나무들이 너무나 많다. 오로지 남만을 헐뜯고 판단하고 몰아붙인다. 자기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처럼.

입동을 맞은 대한민국은 스스로 벌거벗은 나목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새봄을 준비해야 한다. 아울러 시시각각 터져 나오는 쇼킹한 보도와 괴담의 홍수 속에서 미혹을 분별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