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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사과받은 재계… “강제모금 관행 사라져야”
[헤럴드경제=홍석희ㆍ조민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강제모금’의 대상이 됐던 대기업들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담화를 통해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사과했다. 현직 대통령이 경제인들에 대해 직접 사과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업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강제모금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에선 ‘사과는 큰 의미가 없다’는 냉랭한 반응도 나왔다.

▶“강제모금 없어졌으면”= 4일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관계자는 “현 정부 뿐 아니라 역대 정부들이 한결같이 기업들의 후원을 요구했는데, 때로는 취지가 좋아서, 때로는 원치 않을 때에도 정권에 밉보이기 싫어 참여한 경우가 많았다”며 “이같은 관행이 이번일을 계기로 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의 힘이 워낙 강하다.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기업들은 가지고 있다”며 “구조적으로 정권에 비하면 ‘을(乙)’의 입장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날 사과에 대해 차가운 반응도 나왔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려면 그간 기업들이 냈던 돈을 기업들에게 다시 돌려주면서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는 취지였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만약 기업들에게 돈을 내라고 해서 미안하다면 돈을 기업들에게 돌려주면서 하는 것이 맞다. 상식선의 얘기 아니냐”라는 반응도 나왔다.

사과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순실 사태 때문에 사실상 ‘국가 마비’ 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나온 대통령의 사과이고, 임기가 1년 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반응이다.

재계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를 했지만, 차기 정권에서도 정부가 무엇인가를 할 때엔 항상 돈이 필요하다. 세금 아니면 기업들 모금인데 쉽게 사라지겠냐”며 “사과가 의미를 가지려면 재발 방지 약속이 전제돼야 하는데, 정권이 이미 ‘끝물’ 아니냐”고 말했다.

▶정경유착 끊으려면=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이제 달라져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대기업들이 이권사업을 위해, 때로는 세무조사나 검찰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정치권에 자발적으로 돈을 상납하는 등의 잘못된 선택으로, ‘정경유착’이란 비난을 초래했던 일에 대한 반성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정부나 정치권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공개적으로 기업 모금을 요청하는 경우가 아니면 앞으로는 어떠한 정권의 기금 출연 요구도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지 못하면 당해 기업이 사면초가에 빠질 수 있는 것은 물론 대기업들이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기도어려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경유착이란 오랜 관행을 끊기 위해선 2004년 시행된 정치자금법 개정에 버금가는 제도적 방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의 규제 권한이 방대해 기업들로서는 정부에 잘못 찍히면 손해가 크다고 보고, 정부가 요구하면 계속 돈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형평성에 안 맞는데도 대통령이 대기업을 사면하는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며 “재벌들은 내부 거버넌스 문제나 불법 상속 등 약점이 있어서 정부에 끌려다니게 되는데 차제에 이런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경유착의 원인을 ‘제왕적 대통령제’ 자체라 판단하고, 아예 개헌을 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권력과 거대자본의 유착이 그간 ‘경제민주화‘를 방해해 온 것이다”며 “이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의사결정 투명화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미르·K스포츠 재단에 돈을 낸 53개 기업 중 이사회 의결이나 투명경영위 등 하부위원회에 보고과정을 거친 곳은 4개뿐이다. 이는 바로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가 아직 얼마나 후진적인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라고 말했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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