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청와대가 ‘VIP(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라며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한 정황이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청와대가 미르ㆍK스포츠 재단 모금을 하면서 대기업을 압박한 데 이어 대기업 ‘오너 일가’의 경영권까지 간섭한 정황이 포착된 것은 처음으로, ‘5공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이란 점에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MBN은 “청와대 전 핵심 수석이 2013년 말 CJ그룹 고위 관계자에게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검찰 수사를 들먹이는 녹음 파일을 확보했다”고 3일 보도했다. 이 핵심 수석은 CJ 고위 관계자가 “청와대 내부의 공통적인 의견이냐”고 묻자 “VIP(대통령)의 뜻이다. 너무 늦으면 진짜 저희 난리 난다”고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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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차 WEF(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연차총회 참석차 다보스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1월 21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 벨베데레호텔에서 열린 ‘한국의 밤’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싸이, 존 넬슨 로이드 회장, 박 대통령, 야콥 프랜켈 JP모건체이스 인터내셔널 회장. [사진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
특히 그는 “이 부회장이 버틸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좀 빨리 가시는 게 좋겠다. 수사까지 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인데….”라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검찰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암시했다.
이미경 부회장은 당시 횡령ㆍ배임ㆍ탈세 등 혐의로 구속 수감된 동생 이재현 회장을 대신해 외삼촌인 손경식 CJ그룹 회장과 함께 경영 전면에 나선 상태였다.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이 부회장은 2014년 건강상의 문제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재현 회장과 마찬가지로 근육이 위축되는 희귀병인 ‘샤르코마리투스(CMT)’를 앓고 있다.
CJ그룹은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정권에 ‘미운 털’이 박혔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지난 2012년 개봉한 CJ엔터테인먼트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야당을 노골적으로 지지한다는 보수층의 반발이 있었다. 또 CJ E&M의 tvN 프로그램 ‘SNL 코리아-여의도 텔레토비’에서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를 희화화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같은 일들이 박근혜 정부가 CJ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얘기가 돌고 있다.
특히 이미경 부회장은 2014년 초 ‘스위스 다보스포럼’ 한국의 밤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눈 밖에 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행사에서 이 부회장은 가수 싸이와 함께 ‘한류 전파’의 주인공 역할을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들러리를 선 것 아니냐’며 상당히 불쾌한 심경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은 이후 영화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영화를 내놓았다. 또 박근혜 정부의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인 ‘K-컬처밸리’에 적극 참여했다. K-컬처밸리는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 최순실(60ㆍ최서원으로 개명)씨의 핵심 측근인 차은택 씨가 주도했던 사업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K-컬처밸리를 ‘문화창조융합벨트’를 완성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 했다.
CJ E&M은 경기도 고양관광문화단지(한류월드) 내 한류 테마파크 ‘K-컬처밸리’ 조성 사업에 1조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K컬처밸리가 들어서는 땅은 10년 넘게 사업자를 찾지 못하던 ‘한류월드’ 부지다. 이 부지에 CJ가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더욱이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횡령ㆍ배임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던 시기에 K-컬처밸리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함에 따라 CJ그룹이 이 회장 구명을 위해 차은택 씨가 주도한 사업에 적극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실제로 이재현 회장은 경제인으로는 유일하게 지난 8ㆍ15 특별사면에 포함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미경 부회장 퇴진 요구에 이어 이재현 회장까지 구속 기소된 상황에서 CJ그룹이 정권에 협조하는 제스처를 적극 취할 필요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yeonjoo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