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을 농단한 최 씨에 적용 혐의 미미하다” 비판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청와대 ‘비선실세’ 최순실(60ㆍ최서원으로 개명) 씨 국정농단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최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직권남용’과 ‘사기미수’를 혐의로 적용한 것과 관련해 의아한 시선이 일고 있다. 공직자는 아니지만 미르ㆍK스포츠재단의 자금 모금과 정부 각종 사업에 개입해 이권을 챙겼다는 혐의다.
법조계 일각에선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대한 ‘뇌물’ 여부가 사안의 본질인데, 검찰이 직권남용에 초점을 둠으로써 1차적으로는 ‘거악 혐의의 주변’만 뒤지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뇌물에 대한 대가성 입증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 검찰이 일단 구속영장을 위해 ‘전략’을 썼다는 분석도 나온다.
직권남용죄는 공직자가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 의무 없는 일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할 때 적용한다. 민간인인 최 씨에 이 죄를 적용한 것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공범 관계라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검찰은 2일 밤 긴급 체포된 안 전 수석에겐 이 범죄의 주범으로, 최 씨는 공범으로 각각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 관계자는 안 전 수석을 긴급 체포하면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로) 공범 최순실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점을 고려할 때 주범인 안 전 수석을 체포하지 않을 경우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높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검찰은 청와대 고위 공직자였던 안 전 수석이 최 씨의 사적 조직으로 볼 수 있는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에 깊게 관여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 씨를 위해 대기업을 상대로 800억원에 이르는 기금을 강제로 모금했다는 것이다.
법에서 공범 관계는 범죄의사와 예비 및 준비를 함께 한 경우에 적용한다. 청와대 공식 직위를 가진 대통령 최고 수석비서가 민간인인 최 씨와 함께 사적 목적으로 급조된 재단 설립을 위해 롯데그룹에 70억원을 요구하는 등 기업들을 상대로 1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뺐었다는 혐의다.
최 씨에게 적용한 ‘사기미수죄’는 자신의 개인회사인 ‘더블루K’를 통해 K스포츠 재단의 연구 용역을 따내려 한 데 대해 적용했다. 최 씨가 연구용역 제안서를 쓸 능력조차 없는 무자격 회사를 앞세워 두 차례에 걸쳐 7억원을 가로채려다가 실패했다는 혐의다. 최 씨가 재단 기금을 사적으로 유용하려 했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최 씨 국정농단을 수사한다는 검찰이 “아직도 주변만 맴돌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한다.
청와대로부터 기밀문서를 정기적으로 받아본 최 씨가 고위직 인사뿐 아니라 문화, 외교, 안보 정책까지 흔들고, 청와대 고위직과 도모해 사적 이득을 챙긴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데,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적용한 혐의가 ‘직권남용’과 ‘사기미수’라는 비교적 처벌 수준이 미미한 것이라는 데 검찰에 의구심을 던지는 것이다.
앞서 박진현 서울동부지검 형사4부 부부장검사가 검찰 내부 게시판에 시국개탄의 글을 올리며 “이번 사태의 본질과 관련해선 국민의 눈을 가린채 비선실세가 국가의 인적, 물적 자원을 사적으로 유출한 것”이라고 한 것은 이같은 의심의시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검찰은 가장 먼저 규명이 필요한 청와대 각종 기밀문서가 담긴 ‘태블릿PC’를 최 씨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아직 밝히고 있지 않다. 국정농단의 가장 확실한 ‘물증’으로 꼽히는 자료에 대해 각종 억측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수사 중이라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
최 씨는 여전히 “태블릿PC와 안 전 수석을 전혀 모른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 씨는 지금까지 드러난 혐의만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횡령, 배임, 탈세 등 10여 개에 달한다. 박근혜 정부에 나온 수많은 정책들이 배후에 최 씨가 작용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수사 범위가 방대하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최 씨의 혐의를 가장 결정적으로 밝힐 수 있는 대상은 결국 박 대통령일 것”이라며 “검찰이 거악 주변만 도는 수사를 한다는 비판을 면하려면 결국 청와대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최 씨를 구속해 최장 20일간의 조사 기한을 확보해 ‘국정 농단’ 관련 각종 의혹을 본격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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