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인멸 정황…野 “긴급체포 왜 안하나” 항의
‘비선 실세’ 의혹의 장본인으로 지목되며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최순실(60ㆍ최서원으로 개명) 씨가 31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서게 됐다. 검찰이 수사에 본격 착수한 지 27일 만이다. 하지만 귀국 직후 검찰이 최 씨를 바로 체포하지 않은데다 최 씨 측의 조직적인 증거인멸 정황에 청와대 개각까지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면서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시나리오가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따르면 수사본부는 최 씨가 영국 히스로 공항에서 브리티시에어웨이 항공기를 타고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것이란 정보를 미리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행자 정보 사전확인 제도’에 따라 모든 항공기는 도착하는 국가에 승객 탑승정보를 제공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최 씨가 극비 귀국한 현장에 별다른 관계자를 보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최 씨의 신병을 바로 확보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수사 상황과 단계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긴급체포는 사형ㆍ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우려가 있을 때 이뤄진다.
하지만 최 씨의 행적도 따로 추적하지 않고 증거인멸이나 말맞추기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면서 야당과 시민단체는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검찰 수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신문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대포폰’을 써가며 검찰 출석을 앞둔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을 회유하려고 했다”고 보도하면서 안 수석이 정 전 사무총장 아내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이외에도 검찰의 압수수색에 앞서 K스포츠재단의 컴퓨터가 모두 교체되고 최 씨 소유 회사의 이메일 계정도 전면 폐쇄되는 등 최 씨 측이 검찰 수사를 무력화하려고 한 정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당사자들이 입도 맞추고 행동도 맞춰서 뭔가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흐름을 포착했다”며 “정권 차원에서 진상의 정확한 파악을 막으려는 세력들이 (최씨를) 보호하는 흐름이 보이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지금 현재 일련의 진전은 우병우 민정수석이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우 수석 지휘하에 최순실의 일탈 행위로 입맞추기 하고, 증거인멸을 하고 있다고 우리는 파악한다”고 했다. 정의당 지도부도 전날 오후 중앙지검 청사를 방문해 “검찰 수사가 안일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강력히 항의했다.
하지만 최 씨 측은 이 같은 시나리오설이나 증거인멸 가능성을 전면 부인했다. 최 씨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는 “검찰에서 조사받는 사람들의 내용이 언론을 통해 밝혀지고 있어 관련 사람들끼리 연락해서 말을 맞출 여지가 전혀 없다”며 “검찰이 대대적으로 압수수색을 하고 계좌추적을 하고 있어 이 상황에서 (증거인멸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수사본부 역시 이러한 증거인멸 의혹에 대해 “이미 상당 부분 조사가 돼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양대근 기자/bigroo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