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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화막이 걷히는 순간…‘천지창조’가 시작된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국내 초연…연출 거장 헤닝 브록하우스 간담회


공연이 시작되면 텅 빈 무대와 마주한다. 화려한 꽃밭으로 장식될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오프닝은 예상외로 고요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닥에 누워있던 가로 22미터, 세로 12미터, 1.5톤급 거대한 거울이 서서히 세워지자, 다채로운 빛깔의 세계가 열린다. 무대 위 배우들의 모습은 거울의 반사된 상을 통해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관객은 마치 관음증 환자처럼 ‘보지 말아야 하고’ ‘보지 않아도 될’것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재미에 빠진다.



독일 출신 오페라 연출 거장 ‘헤닝 브록하우스(Henning Brockhaus)(71)’가 25년 전 창조해낸 획기적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가 국내 초연한다.

오는 11월 8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재)세종문화회관과 (사)한국오페라단 공동주최로 오른다.

헤닝 브록하우스는 “1992년 초연한 작품이 신기할 정도로 긴 세월을 보내고 있다”며 “초연 당시 건축적인 요소를 배제한 채 상징적인 요소로만 무대를 채워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는데, 지금까지도 공연의 신선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이탈리아 마체라타 스페리스테리오 야외극장이 헤닝 브록하우스에게 의뢰해 제작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1992년 초연 이후 1994년 로마, 1995년 일본 나고야, 미국 볼티모어, 스페인 발렌시아, 프랑스 툴롱 등 세계 극장을 투어했으며 지난 4월 중국 국가대극원에서 공연했다.

초연에 사용한 무대, 의상, 소품 등을 그대로 공수해온 한국오페라단 박기현 단장은 “‘라 트라비아타’는 국내에서 자주하는 대중적인 레퍼토리이지만, 전혀 새로운 감동을 경험할 것이기에 ‘더 뉴 웨이(The New Way)’란 부제를 달았다”고 말했다.

거대한 거울로 채워지는 무대가 작품의 백미다. 헤닝이 스승이라 부르는 무대디자이너 요셉 스보보다(Josef Svoboda)가 제작한 무대는 187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화려한 색채와 이미지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전하면서도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한다. 특히 바닥에 깔린 작화막(무대 배경을 그린 막)의 쓰임이 특별하다. 헤닝은 “이야기들은 작화막처럼 겹겹이 쌓여있다. 작화막이 걷어지는 순간, 진정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역시 새로운 시도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베르디 악보의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연출했기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베르디가 지금 살아있다면 과연 작품을 어떻게 재해석했을까를 상상하며 연출했다. 중요한 건 관객의 내면을 어떻게 건드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라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헤닝은 작품의 원작인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동백 아가씨(1848)’의 극적 구성을 오페라에 녹여내려 했으며, 브레히트의 서사극 형식(관람자 스스로가 극적 진실을 판단하도록 하는 변증법적인 양식)을 도입해 관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을 거라 귀띔했다. 그는 “거울 안에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사극적 연출은 작품을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작품의 제목 ‘라 트라비아타’ 즉 ‘길 위에 버려진 여성’이란 뜻을 되새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3막에서 거울이 수직으로 세워지면 객석에 앉은 관객은 거울 속의 자신과 만난다. 이들은 법정에 선 증인처럼 ‘라 트라비아타’의 인생을 반추해보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지휘는 이태리 출신 세바스티아노 데 필리피가 맡고, 비올레타 역에 소프라노 글래디스 로시, 알리다 베르티, 알프레도 역에 테너 루치아노 간치, 이승묵, 제르몽 역에 바리톤 카를로 구엘피, 장유상 등이 출연한다. 관람료 3만~28만원.

뉴스컬처=송현지 기자/so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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