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빈공간을 비움으로 채운다…없는듯 있는 ‘보이드’의 美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보이드展’

5개 작가그룹 참여 내년 2월5일까지
지면 아닌 공간을 잡지의 페이지로 활용

관객의 이동이 종이넘기는 신체행위 대체
미술관 빈공간에 자유로운 변화 시도



건축가에게 보이드(Void)란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을 통해 전혀 엮이지 않을 것 같은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예상치 못한 효과가 나타난다. 조금 과장한다면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공간이다.

이같은 보이드 공간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서울관은 공간, 건축, 장소성을 재해석하는 ‘보이드 Void’전을 내년 2월 5일까지 연다.

사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굉장히 독특한 역사ㆍ공간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의 종친부이자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 병원, 근대의 기무사, 그리고 현재는 미술관으로 쓰이면서 이 모든 장소의 특성들이 뒤섞여 있다. 서울관의 건축가인 민현준은 이 모든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현대 미술관만을 위한 거대한 화이트큐브를 지을 수 있었음에도 이를 지양하고 군도(郡島)형 미술관으로 기획했다. 



전시장은 바다위의 섬 처럼 고립됐으나, 이들 전시장을 잇는 다양한 보이드(복도, 마당, 움푹 들어간 마당 등)들이 탄생하면서 전시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설계자인 민형준은 “서울관의 보이드 공간은 공간의 유혹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예상치 못했던 보이드는 작가에겐 멋진 전시공간을 선사하고, 관객들은 이곳 저곳을 떠다니며 역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발견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희천, 오픈하우스서울, 옵.신, 장민승+정재일, 최춘웅 등 다섯 작가그룹은 이 보이드를 적극적으로 또 위트있게 해석한다. 그동안 전시와 작품에 비해 조명받지 못했던 미술관 내외부의 빈공간에 집중한 것이다.

건축을 전공한 미디어 아티스트 김희천은 서울관을 핸드폰 거치대로 설정, 시각 스케일의 자유로운 변화를 시도해볼 것을 제안한다. 구글맵스에서 줌인 줌아웃 기능을 활용하듯 서울관의 스케일을 크게 또는 작게 바라볼 수 있다. 미술관에 들어선 순간 여기가 어디인지, 몇 층인지, 어느방향인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관객에게 미술관 전체를 조망하는 건축가의 시선을 선사한다. 곳곳에 숨은 보이드를 이해하는 것은 덤이다.

무대에서(scene) 벗어난(ob-)것을 다루는 잡지인 ‘옵.신(서현석, 김성희, 슬기와 민)’은 이번 전시에서 지면이 아닌 공간을 잡지의 페이지로 활용했다.

미술관 내외부를 관객이 이동하면서 성립되는 참여형 퍼포먼스다. 종이를 넘기는 신체행위를 장소를 넘기는 행위로 대체한다.

관객은 미술관 안팎을 이동하면서 기존 관람행위와 유사한 체험을 하지만, 공간의 배열과 체험의 배치는 출판물이라는 구조에 상응하는 형태로 재구성된다.

최춘웅은 한국 건축가들이 애정한 ‘보이드’의 성격을 탐구한다. 보이드의 출신, 계보, 유형을 아우르는 하나의 가설을 설정하고 연구한 내용을 3막 연극 형식의 강연 퍼포먼스로 엮어낸다. 건축 청사진상에서 ‘X’로 표시되는 보이드는 한국 건축의 핵심적 요소다. 특히 바닥이 뚤려 바로 아래층 까지만 열리는 ‘납작한 보이드’는 공간적이라기 보단 개념적이고, 볼륨으로 다가오기보단 영역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장민승+정재일은 전시실 6을 거대한 밀폐형 공명통으로 활용해 빛과 음악으로 채웠고, 오픈하우스서울(임진영, 염상훈, 성주은, 김형진, 최진이)은 미술관 주변지역인 소격동, 삼청동, 가회동의 보이드를 찾고 그 성격을 분석했다.

전시기간동안 연계프로그램도 다양하다. 26일에는 ‘문화가 있는 날’ 행사 일환으로 ‘보이드’전 참여 작가 라운드 토크가 서울관 멀티미디어프로젝트홀에서 열린다.

15일, 11월 5일, 12월 3일에는 최춘웅이 연출하는 한국 현대건축사를 은유하는 주제 낭독극 ‘건축극작X’가 진행된다. 26일부터 30일까지 오픈하우스 서울의 ‘보이드 커넥션+옥상달빛 페스티벌’이, 12월 7일에는 큐레이터 토크가 준비돼있다. 이 전시는 서울관 입장료만 내면 볼 수 있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