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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 카페] 가을햇살 받으며 읽는 글 한편…참으로 따뜻하다
작가가 배달한 감동의 詩·얘기 51편
삶에 지친 나를 다독이는 위로의 노래



좋은 에세이는 따뜻하고 맑아 자꾸 글 사이에 머물게 된다.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를 채우는 기분좋은 공기는 위로와 공감, 온기와 그리움으로 굳은 마음을 느른하게 풀어준다.

김기택 시인의 첫 산문집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와 영미작가들의 산문의 향연 ‘천천히, 스미는’(봄날의책) 속에는 가슴 한 켠이 뻐근해오는 글 한편 쯤은 만날 수 있다.

‘다시, 시로 숨쉬고~’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서른이 넘어 등단해 시 쓰기와 직장 생활을 이십여 년간 병행해온 김 시인이 뽑은 51편의 시와 진솔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중학생일 때 짝의 집으로 놀러간 적이 있다. 친구가 집에 들어오라고 하는데 내 몸은 전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자면 신발을 벗어야 했고 내 발을 보여주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에게 내 발을 도저히 보여줄 수 없었다. 내 발가락은 왼발과 오른발 대칭을 이루어 같은 모양으로 흉하게 뒤틀려 있다. 선천적으로 그렇게 생긴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 발에 맞는 신발이 없어 작은 신발을 억지로 신다보니 발가락이 심하게 뒤틀리게 된 것이다.”(52~53 쪽)

시인은 그 작은 신발에 스스로를 변형시킨 발가락에서 우리 몸의 마술들을 읽어낸다.

우리가 외롭다고 느끼는 건 주위에 말을 건넬 이가 없어 홀로 입을 다물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시인은 오히려 너무 많은 말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고 말한다.

“시는 자기 자신을 위한 말이다. 내 안에는 지치고 외롭고 괴로운 사람이 살고 있으며 그는 끊임없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시는 내가 내 안의 수많은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그 말은 말로 지친 말을 쉬게 하는 말하기이며, 말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말하기이기도 하다.”(60~61 쪽)

51편의 시와 산문은 따로 혹은 같이 읽어도 좋다. 그 중 비스와라 쉼보르스카의 시 ‘경이로움’은 존재의 신비를 일깨워준다.

“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 사람인 걸까요?/나머지 다른 이들 다 제쳐두고 오직 이 한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나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필이면 화요일에?”(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경이로움’)

김 시인은 “여행하다 좋은 풍경을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면 가족이 먼저 생각나듯, 좋은 시를 읽을 때도 여럿이 나누면 즐거움이 얼마나 커질까 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책을 펴냈다고 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 영미작가 25명의 산문 32편을 담은 ‘천천히, 스미는’에는 지나치기 어려운 매력적인 산문이 많다.

버지니아 울프의 ‘나방의 죽음’, 피츠제럴드의 ‘잠과 깸’, 소로우의 ‘소나무의 죽음’, 포크너의 ‘그의 이름은 피트였습니다’, 메리 헌터 오스틴의 ‘걷는 여자’, 제임스 에이지의 ‘녹스빌:1915 여름’ 등 명수필들을 만날 수 있다.

에이지의 ‘녹스빌:~’은 작가가 소리로 이루어진 글을 쓰겠다며 자리에 앉아 50분 만에 완성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여섯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함께 보낸, 마지막 여름의 소리를 담은 글이다. 아버지가 잔디밭에서 호스로 물을 상쾌하게 분사하면서 내는 다채로운 소리, 별빛 아래 누워 소곤대는 소리 등 인상적인 이미지와 소리들이 선명하다.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운율은 있다”는 앨리스 메이넬의 ‘삶의 리듬’은 오래 음미해볼 만하다.

“행복은 사건에 달려 있지 않고 마음의 밀물과 썰물에 달려 있다. 병에도 운율이 있다. 하나의 원인에서 생긴 슬픔을 어제도 참지 못했고 내일도 참지 못하겠지만 오늘은 원인이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견딜 만하다. 즐거움은 불시에 우리를 찾아온다. 즐거움의 궤도를 눈여겨봤다면 길목에서 기다릴 수도 있었을 텐데.”(81쪽)

알도 레오폴드의 에세이 ‘내가 바람이라면’에는 시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십일월 옥수수에 음악을 연주하는 바람은 시간이 많지 않다. 옥수수 줄기는 웅웅거리고 헐거워진 겉껍질은 쾌활하게 휘휘 돌다 하늘로 휙 날아오른다. 바람은 여전히 바쁘다.”

개성이 다른 글,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모여 독특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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