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시티의 카드는 가로 7cm, 세로 11cm로 보드게임 카드치고는 이례적으로 크다. 규격이 큰 만큼 카드에는 고대 문명 탐사 과정을 나타내는 큼직한 일러스트가 있다. 숫자 순서대로 모아서 한 장씩 넘겨보면 숫자가 커질수록 점점 전진하여 고대 도시로 가는 탐사 과정을 즐길 수 있다. 카드 뒷면의 나침반 그림과 유물 지도처럼 보이는 게임판은 마치 인디아나 존스가 된 기분을 갖게 한다.
그러나 유적 탐사라는 게임 테마는 여기까지다. 실제 게임 내용은 수학이나 경제를 연상시킨다. 작가 라이너 크니지아가 수학 박사이자 금융기업 출신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코스모스가 제작하고 리오그란데가 배급한 '로스트 시티' 초기 영문판 버전. 현재 버전은 한글판을 비롯해 박스 디자인이 바뀌었다. (사진: 안혜란 인턴기자)
로스트시티의 규칙은 지극히 간단하다. 카드 1장을 쓰고 카드 1장을 받으면 차례가 끝난다. 이 과정을 카드 더미 떨어질 때까지 하면 된다. 대신 점수 계산의 규칙은 조금 복잡하다. 5개의 탐사지에서 점수를 계산하는 데, 충분한 탐사가 진행된 곳은 점수, 어설프게 탐사가 진행된 곳은 감점, 아예 탐사를 시도하지 않은 곳은 0점을 받는다. 한정된 기회 동안 모든 탐사지에서 점수를 뽑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5개의 탐사 루트 중 점수를 많이 낼 가능성이 있는 곳을 판단하는 선택과 집중의 플레이가 요구된다.
점수를 배수로 올려주는 투자 카드는 충분한 탐사 성과를 얻는다면 큰 보상을, 그렇지 못하면 큰 벌칙을 주는 리스크로 작용한다. 실제 게임에 들어가면 플레이어는 용감한 탐험대보다는 깐깐한 회계 담당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로스트시티는 간단하면서도 선택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고 흥미진진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살짝 꼬아놓은 점수 계산 방식은 선택과 집중의 문제, 리스크 대비 투자 효율의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게임 전반에는 카드를 모으며 점수를 낼 만한 탐색지를 찾고, 중반에는 모인 카드를 사용해 탐사를 진행하면서 카드 한 두 장 차이로 희비가 갈리는 긴장감을 느끼며, 후반에는 상대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보며 1점이라도 더 높은 플레이를 고민함으로써 마치 바둑의 끝내기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로스트시티는 상대가 큰 실수를 연이어 하지 않는다면 최고의 긴장감을 선사하는 게임인 셈이다.
로스트시티는 1999년 발매 당시 인기 작품이었으나 티칼 같은 경쟁작에 밀려 '올해의 보드게임상'(Spiel des Jahres: 독일 2대 박람회 출품작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에 주는 상으로 보드게임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수상에는 실패했다. 대신 로스트시티를 조금 바꿔서 4인 보드게임으로 만든 '켈티스'가 2006년에 이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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