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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인, 왜 우리가 국감에 있어야 하나요?
7초간 답변 하려고 7시간 대기
대기실 구석에서 회사업무 결재
무분별 기업인 국감증인 자제를

“네 시간 넘게 국회에서 대기만하고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국회도 이제 성년이 됐잖아요. 20대 국회는 뭔가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19대 국회 정기국감에 출석요구를 받고 증인으로 불려나갔다가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왔던 기업인 A씨는 지난해 9월을 상기하면서 혀를 찼다. 그는 국회를 빠져나오면서 함께 대기하고 있던 기업인들과 눈이 마주쳐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고 했다. 그는 특히 ”할 일이 태산인데 지금 내가 뭘하고 있나 싶었다”고 했다. 국회의 구석진 자리에서 결재를 해야 했고, 임직원과 거래선으로부터 수십통의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관련기사 14면

국정감사는 행정ㆍ사법을 포함하는 ’국가작용 전반‘을 감시ㆍ비판하는 행위인 까닭에 국가기관과 특별시 광역시도, 정부투자기관, 한국은행, 농수축협중앙회, 감사원의 감사 대상기관은 물론이고, 기업인을 포함한 일반인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18대 국회 들어 일반인 증인이 늘어나고, 19대 들어서는 특히 기업인 증인 요구가 폭발하면서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헤럴드경제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 간 국감의 일반증인 추이를 조사한 결과, 17대 국회 중 연평균 140명에 머물던 일반증인은 18대 국회(2008~2011년)들어 213명으로 52% 증가했고, 19대(2012~2015년) 들어선 292명으로 17대 국회 대비 두 배 수준을 넘었다. 일반증인은 기업인과 전ㆍ현직 공직자, 전문가(교수 등), 기타 증인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기업인만 떼어놓고 보면 이같은 추이는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2011년 일반증인 212명 가운데 기업인 증인은 78명으로 36.8%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19대 국회가 들어선 2012년 기업인 증인은 일반증인 236명 중 114명으로 48.3% 비중을 기록했다. 이후 2015년까지 일반증인 중 기업인 증인은 평균 45.7% 비중을 차지했다.

국정을 감시ㆍ비판하는 국회 활동에 성역은 없다. 기업인이 필요하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기꺼이 국회에 나가야한다. 하지만 문제는 국감이 그렇게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의원 질의에 짧게는 두세 시간, 많게는 대여섯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고작 1~2분을 답변하든가, 아예 답변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돌아가는 기업인이 부지기수다. 2013년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가 꼭맞는 예다. 37명의 일반증인 출석이 있었던 당시 환노위 국감장에서 일반증인의 평균 대기시간은 4시간19분이었고, 답변시간은 평균 2분28초에 불과했다.

2014년 농림위 국감 땐 한 어선어업인 공동대표가 6시간56분을 국회에서 기다렸다가 7초 간 답변하고 돌아간 적도 있었다. 또 2014년 국감 때 불러나간 일반증인 및 참고인 34명은 단 한번도 질문을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 국감장에 나갔던 한 기업인은 “몇 시간을 기다렸다가 1~2분 진료 받고 돌아오는 심경이었다”며 국감장을 종합병원 외래진료실에 비유하기도 했다.

국감장에 참석한 기업인에 대한 의원의 막말과 ‘갑질’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국감장에서 한 의원은 증인으로 참석한 한 기업 대표에게 반말로 호통을 치며 어린아이 다루듯 해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또 다른 의원은 한 그룹회장에게 느닷없이 ‘한-일 축구 시합에서 어디를 응원하겠느냐’며 본질과 다른 질문을 해 빈축을 샀다.

국감이 국감다운 모습을 찾지 못하는 것은 부실한 정보공개에서 비롯된다. 국감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이듬해 국회사무처의 ’국정감ㆍ조사 통계자료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자료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국감 회의록엔 나와 있지만 통계자료집에는 사라진 내용이 적지 않다. 2013년도 국방위 국감에는 4명의 일반증인이 참석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통계자료집에는 단 1명만 참석한 것으로 돼 있다. 증인채택 요청 내역도 비공개 비율이 높아졌다. 2012년 기획재정위는 일반인 14명을 출석요구하고도 단 한명만 공개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일단, ’부르고 보자‘ 식의 무분별한 증인채택을 지양하는 것이 옳다. 증인채택 요건을 강화하고, 해당사안과 직접적으로 관련없는 증인 출석을 제한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19대 국회 때 추진됐던 관련법 제정이 무산된 것을 아쉬워했다.

이상일 새누리당 전 의원은 19대 국회 때 ▷증인채택 기준 강화, ▷사전답변서 제출 등을 뼈대로 하는 ’법률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입법이 무산돼 자동 폐기됐다.

윤재섭 기자/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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