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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검사 비리 터지면…왜 ‘중고 고급차’가 등장할까
벤츠 여검사·제네시스 검사장…
사건때마다 차량거래 단골 적발
중고차 사용기간·시세파악 곤란
정확한 뇌물 액수 특정 어려워



올 한해 법조계가 잇따르는 추문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 4월 정운호(51)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수임료 분쟁이 촉발한 법조 비리 사태는 홍만표ㆍ최유정 등 전관 변호사들에 이어 현직 검사와 부장판사들로 확대됐고, 급기야 최근 홍 변호사의 첫 재판에선 로비 대상으로 우병우(49) 청와대 민정수석 이름까지 거론됐다.

정운호 의혹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달 진경준(49) 전 검사장의 ‘넥슨 스폰서 의혹’까지 일파만파 커지면서 결국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법조계를 향한 국민의 비난과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동안 법원과 검찰이 늘 재발 방지를 다짐했지만 법조 비리는 끊이지 않았고, 수차례 내놓은 ‘셀프 개혁안’도 결국 휴지 조각이 됐다.

대검찰청이 올해 1월 발표한 ‘법조 주변 부조리 사범 단속 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법조 비리 사건으로 사정기관에 적발된 인원은 총 2537명이다. 2006년 1292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1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진 전 검사장처럼 금품을 받아 ‘뇌물수수’나 ‘변호사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법원ㆍ검찰ㆍ경찰 공무원은 2010~2015년 80명에서 최대 170명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5년간 법조 비리 양상을 보면 고급 승용차가 빠지지 않았다.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건설업자로부터 업체 명의로 리스된 제네시스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후 이듬해 ‘그랜저 부장검사’ 사건이 또 한번 법조계를 뒤흔들었다. 2008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로 재직 중 건설업자로부터 사건 무마 청탁과 함께 그랜저를 받은 사건이다. 당초 검찰은 해당 검사에게 무혐의 결론을 내렸지만 비난 여론이 빗발치면서 특임검사를 임명해 재수사에 나섰고, 결국 그랜저 부장검사는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다.

2011년 변호사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벤츠를 받은 ‘벤츠 여검사’ 사건으로 법조계는 또 한번 들썩였다. 대법원은 지난해 “(벤츠는) 사건 청탁 대가가 아니라 사랑의 정표”라며 해당 여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번 ‘정운호 의혹’과 ‘진경준 사건’에서도 고급차는 여지없이 등장했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진 전 검사장은 2008~2009년 넥슨홀딩스 명의로 리스한 제네시스를 무상으로 사용하고, 이 차량의 인수비용 3000만원까지 넥슨으로부터 챙겼다. 김정주(48) NXC(넥슨 지주사) 회장은 사건 수사에 대비해 친구인 진 전 검사장에게 ‘보험용’으로 이같은 편의를 제공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정운호 전 대표의 상습도박 사건 재판과 관련해 ‘로비 리스트 8인’에 거론됐던 인천지법 김모 부장판사는 정 전 대표로부터 레인지로버 중고차를 시세보다 싸게 매입한 데 이어 매입대금까지 다시 돌려받아 역시 뇌물수수 의혹을 받고 있다. 이처럼 법조인과 사건 관계인 간의 차량 거래가 다수 적발되면서 고급차가 법조 비리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잡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중고차가 뇌물로 오가는 배경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액수 특정이 어려운 점을 꼽았다. 부장판사는 “새 차를 뇌물로 받았을 경우 뇌물수수액이 바로 나오지만 중고차는 사용기간과 시세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워 액수를 특정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뇌물 규모에 따라 형량도 달라지기 때문에 법원 판결 시 정확한 액수를 산정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실제로 중고차를 뇌물로 받아 기소된 사건에서 뇌물수수액을 두고 종종 다툼이 벌어진다.

지난해 부산지검은 중고 렉서스를 받고 건설업자에게 부정 과다대출을 해준 금융기관 직원 박모 씨를 재판에 넘기면서 해당 차량의 취득가액을 5030만원으로 산정했다. 매입가격에 더해 대행수수료와 매매알선수수료, 관리비용까지 포함시켰다. 반면 박 씨는 개인적으로 감정인을 동원해 평가한 결과 2955만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산지법은 차량 매입시 자동차양도증명서에 기재된 4990만원만을 혐의 액수로 판단했다. 대행수수료나 매매알선수수료는 제외했다. 대법원 판례는 뇌물 가액을 평가하는 데 근거가 되는 자료가 여러 개일 경우 그 중 가장 신빙성이 담보되는 객관적ㆍ합리적 자료를 채택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알기 어려운 경우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료를 채택해야 한다. 부산지법 역시 자동차양도증명서에 기재된 취득가액이 객관성과 합리성 면에서 가장 우월한 근거자료로 본 것이다.

현재 비슷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모 부장판사나 진 전 검사장 역시 향후 재판과정에서 직무관련성이나 이같은 뇌물수수 가액을 두고 치열한 법리공방을 펼칠 것으로 법조계는 예상하고 있다. 

김현일ㆍ고도예 기자/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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