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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 한국 주방문화에 ‘임머 베제르’입힌 가전의 전설
독일본사 영업전략까지 바꾸며 10년간 매출 413% 성장시킨 주역

내달 퇴임하는 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의 영업인생 40년

 

 독일 북부 작은 도시 귀테슬로우에 있는 밀레(Miele)본사. 자그마한 동양인 한명이 본사에 나타나면 밀레 경영진들은 그를 피해다니느라 법석을 떨었다. 그는 원칙을 중시하고 깐깐하기 그지없는 독일 경영진에게 무리한 제안만 줄줄 늘어놓았다. 

국내 명품가전시장이 생기면서 밀레코리아 성장세가 막 탄력받던 시기였다. 한국 소비자들을 위해 세탁기와 청소기를 비행기로 공수하거나 물량을 더 받기 위해 독일 경영진과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였다. 밤새 국제전화로 설득하다 안되면 다음날 독일행 비행기에 바로 몸을 실었다. ‘가전의 벤츠’밀레를 한국시장에 뿌리내리게 한 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이사 얘기다. 그가 맨땅에서 맨손으로 일군 밀레코리아는 2005년 이후 10년동안 매출만 413% 성장했다. 

밀레코리아의 성공사례는 독일 본사사업전략도 바꿔놓았다. 안 대표는 밀레 해외법인장 47명이 모두 모인 앞에서 한국시장 성공담을 수차례 설파했다. 이는 밀레 해외지사에 대부분 적용됐다. 조그만 해외법인 하나가 한세기를 넘긴 독일 본사의 영업방침을 뒤흔든 셈이다.

다음달 안 대표는 14년동안 이끌었던 밀레코리아를 떠난다. 그의 퇴임식을 위해 오너인 마르쿠스 밀레 회장이 방한한다. 밀레 회장은 안 대표에 대해 “밀레코리아의 역사이자 모든 숫자를 만든 인물”로 평했다. 

 


▶불도저같은 추진력 얻은 23년 상사생활=안 대표는 가전업계 출신은 아니다. 그는 정통 종합상사맨이었다. 그는 1977년 대학을 졸업한 직후 쌍용에 입사했다. 외환위기 이후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당시 쌍용은 잘 나가던 상사였다. 안 대표는 입사하자마자 주력상품인 시멘트 수출을 맡았다. 영업망조차 제대로 없던 시절 실적을 차곡차곡 올렸다. 승진도 빨랐다. 특진한 덕분에 서른두살이던 1982년 쿠웨이트지사장에 임명됐다. 안대표는 “눈이 눈썹 위에 올라가 있을 정도로 자만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기세등등한 자신감은 얼마안가 보기좋게 꺾였다. 쿠웨이트로 건너간 지 2년만인 1984년 제2차 중동전이 터졌다. 전시에 실적은 고꾸라졌다. 결국 쌍용은 쿠웨이트에서 철수했다. 뼈아픈 경험은 자산이 됐다. 그는 “특진할 때 내가 잘 나서 잘 된거라고 여겼는데, 조직의 지원과 시장상황, 인간관계 모든 것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미국 LA지사에서 5년, 태국 방콕 지사장으로 4년을 더 일했다. 23년동안 해외에 온갖 물품을 팔면서 보낸 상사생활은 큰 밑천이 됐다. 안 대표는 “조직의 탄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험지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승부를 걸어볼 수 있는 도전정신과 불도저같은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밀레코리아 인수조건은‘Mr 안’ =공백기를 잠시 가졌던 2003년. 안 대표는 쌍용 자회사 코미상사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밀레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코미상사는 독일 명품가전 밀레 제품을 수입해 판매했다. 코미상사의 영업망을 갖춰가던 무렵 모기업 쌍용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04년 채권단이 코미상사를 매물로 내놓았다. 수입처였던 독일 밀레가 인수의사를 타진했다. 밀레는 인수조건으로 “안 대표가 밀레에 잔류해야 매매계약이 유효하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다. 한국사업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밀레는 2년반동안 손발을 맞췄던 안 대표의 자질을 눈여겨봐왔던 것이다.

2005년 8월 밀레코리아가 설립됐다. 안 대표는 밀레 역사상 처음으로 비독일인 출신 지사장이 됐다. 밀레 회장이 “한국은 어려운 시장”이라고 걱정하자 그는 호기롭게 “상사 시절 했던 업무 난도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라고 답했다. 품질관리까지 검수해야했던 중소기업제품에 비하면 밀레 제품은 적어도 품질만큼은 보장됐기 때문이다.

막상 앞길은 캄캄했다. 한국은 월풀, 소니 등도 버티지못해 ‘외산업체의 무덤‘으로 불리는 시장이다. 당시 독일언론도 ‘삼성과 LG의 나라인 한국에서 밀레가 성공할 수 있을까’라고 의구심을 표했다.

안 대표는 “한국시장이었지만 마치 척박한 해외에서 물건을 파는 느낌이 들었다”며 “시장전략과 마케팅방식 등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했다”고 말했다.

▶獨경영진 괴롭히던 악바리 법인장 =당면과제는 브랜드 홍보였다. 삼성과 LG 틈바구니에서 겨냥한 곳은 서울 강남이다. 밀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가전 브랜드다. 세탁기, 식기세척기, 냉장고 등은 국산제품보다 2~3배 비싼 편이다. 그러나 한국법인에 지급된 광고비는 넉넉치 않았다. 제한된 자원으로 마케팅효과를 높이기 위해 상위 1%를 정조준했다.

안 대표는 “타워팰리스와 아이파크 등 고급주상복합에 빌트인 제품을 공급하면서 부유층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면서 “고가품인만큼 부가 집중된 강남에서 승부를 봐야했다”고 말했다.

명품가전마케팅에서 파격적인 시도도 했다. 바로 인터넷 비즈니스다. 밀레는 국내 빌트인시장에서 명품가전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한 상태였다. 온라인판매는 명품이미지를 훼손할 소지가 다분했다. 독일 본사에서는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안대표도 굽히지 않았다. 독일 본사로 수차례 찾아가 한국시장만의 특수성을 내세워 끈질기게 설득했다.

안 대표는 “삼성전자같은 막강한 기업의 안방에서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는 인터넷비즈니스와 체험마케팅 뿐이었다”고 말했다.

안 대표의 고집에 독일 본사가 물러섰다. 우선 엔트리제품인 진공청소기만 팔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청소기를 구입한 소비자들의 호평이 올라오면서 금세 입소문이 났다. 주문이 밀리자 물량 공급이 시급했다. 안 대표와 밀레 본사와의 입씨름이 다시 시작됐다. 밀레 본사는 비행기로 청소기를 빨리 공수해달라는 안대표의 요청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안 대표는 밤낮 가리지않고 전화를 붙든채 한국 소비자들 특성을 설명했다. 그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때 이윤을 남기는 것보다 소비자와 약속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했다”면서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썼다”고 소회했다. 결국 독일 에서 비행기로 한번에 500~2000대 청소기가 공수되기 시작했다.

안대표는 “청소기같은 ‘소물’이 안착하자 세탁기, 냉장고 같은 ‘대물’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면서 “세탁기도 수십여차례 비행기로 날랐다”고 말했다. 그만큼 안 대표가 각서를 쓰는 횟수도 늘어났다. 비행기 공수는 본사 규정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한해 생산량을 정확하게 예측해 제품을 만드는 독일 공장도 안 대표의 잦은 물량요구에 골치를 앓았다. 밀레 생산총책임자가 오스트리아 법인장으로 부임하면서 “이제 미스터 안을 만나지 않아 편하다”고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獨 본사 경영원칙 깨버린 韓법인 =안 대표는 안주하지 않았다. 2007년부터 예전만 못한 부동산시장을 주시했다. 초기 밀레코리아는 빌트인 등 기업(B2B)시장이 주력이었다. 그는 건설 경기에 따라 B2B시장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고 봤다. 시장 전략을 서둘러 바꿨다. 품질만큼은 자부했기에 재빠르게 소비자(B2C)구조로 전환할 수 있었다. 가전업체가 B2C시장에 자리잡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현재 밀레코리아 전체 매출에서 B2C 비중은 약 99%다. 이는 B2B에 치중한 해외법인들이 고전할 때 밀레코리아가 건재한 이유다. 밀레코리아는 안대표 취임 이후 11년동안 단 한번도 적자를 내지않았다. 밀레코리아는 외형은 크진 않지만 새로운 시장전략을 세울 수 있는 최적의 법인으로 거듭났다.

안 대표는 “며칠조차 기다려주지 않는 한국 소비자를 상대로 본사 방식대로 점잖게 마케팅했다면 망했을 것”이라며 “본사에 가장 자주했던 말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였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 사람들은 숫자를 봐야 인정하는데 밀레코리아는 실적으로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3~4년에 한번씩 법인장을 바꾸는 밀레에서 안 대표가 장수한 비결은 뭘까. 그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면서 “나를 끝까지 믿어준 독일 본사 경영진과 밀레코리아 직원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안 대표의 마지막 공식일정은 9월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가전박람회(IFA)다. 그는 오는 31일 수없이 오갔던 독일로 마지막 출장을 떠난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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