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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동물원, 그 이면엔 시대가 있었네
런던동물원 ‘종의 기원’저자 다윈도 관여
콰가얼룩말등 멸종동물 보호 끝까지 분투
베를린 동물원 제2차대전때 폭탄 떨어져
3715종 동물중 90마리만 생존 아픔도



1909년 11월 창경궁은 일제의 우리문화 말살 정책에 따라 창경원으로 바뀐다. 왕의 집이 동물들의 집으로 격하된 것이다. 부끄러운 역사이지만 창경원은 볼 거리가 많지 않던 도시의 놀이공원으로 오랫동안 기능해왔다. 각 나라의 동물원의 역사는 도시의 형성과 이면을 보여준다.

런던과 베를린, 로마에서 상하이까지 세계 14곳의 동물원을 여행한 대만의 젊은 소설가 나디아 허는 ‘동물원 기행’(어크로스)에서 “오래된 동물원은 묵묵히 그 시대의 흐름을 담아낸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 어떤 건물들보다도 훨씬 더 진실하게 그 도시를 말해준다.”고 말한다.

근대화과정에서 맨 앞에 서 있는 도시 런던은 동물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런던동물원은 대중에게 개방된 세계 최초의 동물원이다. 1829년 세계 최초의 동물학자 협회인 런던동물학회의 관리아래 문을 열었다. 다윈도 ‘종의 기원’을 쓰기 20년 전 이 학회 멤버였다. 런던동물원과 동물학회의 이런 관계는 런던동물원의 성격을 말해준다. 유럽 최초의 코끼리였던 점보와 영국 최초의 하마가 모두 이 곳에 정착했고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와 콰가얼룩말 등 지금은 완전히 멸종한 동물을 위해 마지막까지 고군분투했던 곳이 런던동물원이다.

리젠트파크 북쪽에 위치한 런던동물원은 2013년 현재 806종, 1만 9178마리의 개체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동물원이다. 이렇게 많은 생물종을 키우는데 예산이 만만치 않지만 후원회와 후원금, 입장료 수입으로 운영된다. 여기에는 기발한 마케팅이 한몫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호랑이 구역내의 풀밭에서 블루레이 버전으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관람하는 프로그램 같은 식이다. 입장료는 3만4000원정도로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저자는 런던동물원에서 동물원이 단순오락거리가 아닌 과학의 발전이라는 오랜 전통을 읽어낸다.

파리식물원 내에 자리잡은 부설 동물원은 프랑스혁명에서 살아남은 희한한 역사를 갖고 있다. 혁명 당시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루이 14세가 수집한 동물들이 있었다. 궁전을 차지한 자코뱅과 급진주의자들은 원숭이와 사슴을 피혁상에게 넘기고 말과 소, 양 등 쓸 만한 동물들은 남겨두엇다. 이렇게 골라내고 남은 쓸모도 없고 처치 곤란한 동물들이 파리식물원에 보내졌다. 

“끊임없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 동물원의 시간은 늘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하다. 손오공도 암사자도 자신의 땅을 개발해서 일확천금을 벌겠다는 꿈 따위는 갖고 있지 않을 테니. 바로 이 때문에 동물원은 ‘자라(ZARA)’, ‘에이치앤엠(H&M)’, ‘나이키’ 같은 해외 브랜드의 매장이 들어선 도심보다 그 도시의 역사적 성격을 더 잘 보존해낸다.“(‘동물원 기행’중에서)

동물표본을 만들어 전시하라는 뜻이었다. 이 때 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문명국가라면 반드시 공공 동물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왕실 소유의 동물원에서 공공의 소유로 바뀐 이 동물원의 운영방식은 온갖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맹수와 온순한 동물의 비율, 안전문제, 동물관련 법규와 예산, 경영, 우리에서 기르는 방식 등 현대 동물원 경영의 주요 이슈들이 이 곳에서 시작됐다. 시민사회의 요람역할을 한 것이다.

베를린 동물원은 제2차세계대전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조류, 동식물이 완전히 파괴됐다가 재건된 것이다. 베를린 동물원은 1844년 독일 최초의 동물원이자 유럽의 아홉번째 동물원으로 문을 열었다. 대부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기증한 동물들이다. 도시 계획이 아직 초기단계인 당시엔 동물원 근처에 인적이 드물었다. 이 때문에 25년동안 최악의 경영난에 허덕여야 했다. 1902년 동물원 지하를 지나가는 첫번째 지하철 노선 U2가 개통되고 공업발달과 함께 베를린 인구가 급증하면서 동물원에 관심도 높아졌다. 동물번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이 곳에 모여들었는데 당시 베를린동물원의 보유 동물 종수는 런던 왕립학회와 맞먹을 정도였다.

1941년 첫 번째 폭탄이 베를린동물원에 떨어졌다. 베를린함락 당시 동물원에 주둔했던 군은 결사항전했다. 초토화된 동물원은 3715종 가운데 사자 두 마리, 하이에나 두 마리, 아시아코끼리 한 마리, 코뿔소 한 마리 등 모두 90마리만 살아남았다. 독일 통일 뒤 베를린동물원과 동베를린의 티어파크를 기능적으로 통합한 베를린 동물원은 도심의 교통 중심지에 있는 유일무이한 동물원으로 유럽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은 동물원이 됐다.

처음부터 주식회사 형태로 출발한 베를린동물원은 나중에 동물원의 스타로 떠오른 아기 북극곰 크누트가 데뷔한 2006년, 165년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다.

이 독특한 여행기는 전쟁과 분단, 통일을 고루 겪어낸 베를린동물원, 2차 세계 대전 이후 ‘동물 외교’의 중심지가 되었던 베이징동물원까지 기나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 세계의 비극과 변화를 지켜본 독특한 공간으로서의 동물원을 흥미롭게 조명한다. 여행길 곳곳에서 로맹 가리, 헤밍웨이, 나쓰메 소세키, U2, 벨벳 언더그라운드, 살바도르 달리 등 수많은 작가들과 문화 예술인들을 소환해가며 그만의 방식으로 동물원을 조명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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