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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소설에도 ‘세대차’가 있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요즘 중년 이상의 독자들은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 또래의 경험과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거리감 때문이다. 걸러지지 않은 거친 말과 가벼움을 거북스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소설에 ‘세대차’가 있을 수 없지만 그 세대만이 공유하고 있는 절실한 그 무엇을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특징적인 것은 있게 마련이어서 소설은 세대 공감의 장이 되기도 한다.

올해 대학소설상 수상작인 이희주 장편소설 ‘환상통’(문학동네)은 일명 ‘빠순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십대ㆍ 이십대 여성의 아이돌 팬문화를 당사자의 목소리에 담아 문학적으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환상통/이희주 지음/문학동네]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를 사랑하는 이십대 여성 m과 만옥, 만옥을 사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사생팬’의 일상이 그대로 그려진다. 휴학생 m은 N그룹의 멤버 M을 사랑해 사인회, 공개방송, 행사 등에 빠짐없이 찾아다닌다. 공개방송을 기다리던 중 m은 만옥이란 여성을 만나 강한 연대감을 느끼며 급속히 친해진다. 침이 마르게 그들의 연인(?)을 찬양하는 이들의 일상은 오로지 기다림.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외로운 사랑이지만 둘은 또 그들을 만나러 간다. m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사랑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연애소설 탐독하고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고 탐구하고자 한다면, 만옥은 그 사랑에 온 몸을 내던지고 열렬히 앓는 인물. 만옥은 소속사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M이 먹고 건물 앞에 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빈 그릇의 입술자국을 상상하고 행복해한다. 무대위에서 M과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선 걸그룹에 질투를 느끼는 등 가상의 연인으로 살아간다. 만옥을 짝사랑하는 남자는 그런 만옥이 도무지 이해불가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남자는 만옥과 우정을 나눈 m을 찾아가 만옥과 함께 했던 시간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한다. 소설을 통해 우리는 ‘빠순이’가 별종이 아닌 사랑의 또 하나의 변주임을 듣게 된다.

2014년 출간한 첫 소설집 ‘폴링 인 폴’을 통해 언어와 소통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 소설가 백수린이 2년만에 내놓은 두번째 소설집 ‘참담한 빛’(창비)은 빛이 환희가 아닌 칼날같은 아픔과 고통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집은 2015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여름의 정오’와 같은 해 문지문학상 ‘이달의 소설’에 선정된 ‘첫사랑’ 등 10편을 묶었다. 표제작 ‘참담한 빛’은 영화잡지 기자 정호와 영화제 참석차 내한한 다큐멘터리 감독 아델 모나한과의 짧은 만남과 충격적 진실을 담고 있다. 둘이 탄 차가 터널을 통과하면서 보인 아델의 공포증으로 시작된 아델의 고백은 정호에게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6개월된 아기가 배 속에서 죽고 아내의 이상행동으로 지옥이 된 자신의 결혼생활이다. 아내가 느꼈을 고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슨 일을 벌였는지 정수리를 쪼개는 햇빛속에서 그는 하나하나 복기한다. 
[참담한 빛/백수린 지음/창비]

‘여름의 정오’는 화자가 스무살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피처럼 잠시 머물렀던 빠리에서 만난 열살 연상의 일본인 타까히로를 10여년 뒤 같은 장소에서 떠올리며 시작된다. 타까히로와 첫 데이트는 빠리의 묘지. 조용한 타까히로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나’는 그때가 인생의 정오와도 같았다고 여긴다. 입시에 실패한 친구의 자살과 독서실에서 갑작스럽게 느꼈던 자살 충동, 타까히로의 자살 시도와 일본의 사린가스 테러, 9.11테러, 파리 섬유노동자의 죽음 등 죽음의 그림자가 이곳 저곳에서 어른거리지만 소설은 무겁지 않다. 엉덩이만 들면 깊은 어둠 속으로 낙하할 곳에 핀 하얀 조팝꽃의 아슴프레함과 빠리를 무대로 한 어떤 설렘이 소설 공간을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여름의 크리스마스’(문학과지성사)는 2년전 ‘문지 푸른문학’으로 ‘내일은 바게트’를 출간했던 이은용 작가의 장편소설. 중학교 졸업식을 치르기도 전, 필리핀으로 유학을 간 이진과 준희, 그리고 한국인 아빠와 필리핀인 엄마를 둔 현아의 성장소설이다. 이진은 유학길이 낯설고 불안하다. 앞날에 대한 뚜렷한 확신도 없이 오게 된 필리핀. 그나마 준희와 함께라서 다행이다. 둘은 지하 방에서 의지하며 붙어지내지만 한국인 아빠와 필리핀 엄마를 둔 현아의 등장으로 갈등이 생긴다. 준희는 고양이 망고에 애착을 보이고 점점 자기 세계로 빠져든다. 현아와 어울려 자유의 바람을 맞는 걸 즐기는 이진은 준희와 점점 멀어진다. 망고의 죽음과 준희의 이상한 행동이 이어지고 어느날 준희가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소설은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 낯선 곳에서의 불안과 위로의 근원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그 여름의 크리스마스/이은용 지음/문학과지성사]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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