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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임시정부ㆍ광복군 참여한 中문인 아시나요?
이범석 장군 항일투쟁ㆍ사랑 소설化 푸나이푸 다룬 논문 발표돼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이 중국에 끼친 영향 보여주는 사례”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제7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중국 충칭(重慶)과 시안(西安)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참여한 중국 문인 푸나이푸(卜乃夫) 씨의 일생이 재조명되고 있다.

12일 학계 등에 따르면 중국 푸단대(復旦大) 중국어언문학과 박사과정 한재은 씨는 지난 6월 발간된 ‘한국근현대사연구’ 최신호에 ‘중국 문인 卜乃夫와 한국독립운동’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푸 씨는 1917년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친한파다. 특히 광복군 참모장을 지낸 ‘청산리 전투’의 영웅 철기 이범석<사진> 장군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이 장군을 소재로 많은 소설을 써 중국현대문학사의 주요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중학생 시절인 1932년 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다룬 보도를 보고 이 의사와 한국에 관심을 두게 된 푸 씨는 충칭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당시 그 지역으로 옮겨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러 인사를 만나 한국의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김구 주석을 만난 뒤 1940년 6월 신문에 ‘한국임시정부주석김구방문기’라는 글을 발표했고 이를 계기로 당시 광복군 참모장을 맡은 이범석 장군과도 만났다.

푸 씨는 이후 친해진 이 장군과 함께 생활하며 광복군을 도왔고, 이 장군의 이야기를 매일 들으며 이를 토대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1942년 충칭에서 펴낸 노서아지연(露西亞之戀)은 이 장군이 마점산 장군과 함께러시아의 톰스크를 떠나 중국으로 돌아올 때 독일의 어느 술집에서 만난 한인동포들과 나눈 이야기를 통해 피압박민족의 비애를 표현한 작품이다.

1943년부터 1944년까지 시안의 한 신문에 연재한 ‘북극풍정화(北極風情畵)’는 푸 씨를 출세한 소설가로 만들었다. 이 장군이 일본군에 패한 마점산 부대와 함께 러시아 톰스크로 이동해 8개월 정도 머물 때 폴란드 출신 여성과 사랑을 나눈 이야기다. 이 소설은 이후 영화화돼 많은 사랑을 받았고,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작품이 됐다.

임시정부에서 푸 씨를 고용했거나 그에게 업무를 담당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소설 활동 외에도 중국 신문에 한국의 독립운동을 소개하거나 한중의 협력을 강조하는 글을 발표하면서 ‘선전활동’을 이어갔다.

1942년 4월 11일자 ‘신화일보’에는 임시정부 성립 제23주년을 기념해 필명으로 ‘중한문화관계시론’이란 글을 발표하면서 임시정부의 승인과 중한문화협회 설립을 제의했다. 또 이 장군이 청산리대첩에 관해 서술한 ‘한국의 분노(1942)’, ‘한국광복군소사(1943)’ 등 서술에 푸 씨가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문은 푸 씨가 1942년 광복군 제2지대 편제표와 간부명단을 고려했을 때 이장군의 비서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제2지대의 대외선전활동을 담당하고 예술조장과 함께 시안에서 가무극을연출했다고 설명했다.

논문은 “푸나이푸와 한국 독립운동의 관계는 독립운동 시기 맺어진 한중의 관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라며 “한중관계가 개인적 차원에서도 이뤄졌고, 중국으로부터 일방적인 도움만 받은 것이 아니라 한국의 독립운동이 중국의 여러 분야에 끼친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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