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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18. 세마나산타에 몰린 인파…사흘째, 끝없는 카니발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일주일간의 축제 중 사흘째를 맞이한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축제 준비가 시작된다.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다시 세우고 또다시 빨간 휘장을 두르고는 그 안에 의자들을 정렬한다. 오후에 퍼레이드가 시작되면 티켓을 가진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
며칠간 세비야를 돌아다니다 보니, 늘 세비야 대성당 부근을 지나다니게 된다. 외부가 고딕 양식이라는 대성당은 어느 방향에서 봐도 웅장하고 아름답다. 어제 낭패를 보았지만 오늘은 대성당에 입장할 수 있다.


세비야에 와서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이 세비야 대성당이라는데, 첫날은 돌아다니느라 안 들어갔고 둘째 날은 성당이 개방되지 않아 못 들어갔다. 가뜩이나 관광객도 많은데다 어제 문을 열지 않은 여파인지, 입장하는데도 기다리는 줄이 길다. 성당 입구의 조각상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아 성당으로 들어간다. 방패와 종려나무를 든 조각이 반긴다.
성당 입구를 따라 들어가니 스페인의 옛 왕국 레온(Leon), 카스티야(Castilla), 나바라(Navarra), 아라곤(Aragon)을 상징하는 네 사람이 운구하는 콜럼버스(Columbus)의 묘가 보인다. 앞쪽 두 사람은 사람들이 발을 하도 만져서 칠이 벗겨져 있다. 오른쪽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세비야에 다시 오게 되고 왼쪽 발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118일째 여행, 남미와 스페인, 포르투갈을 지나오면서 여행지에서 많은 성당들을 거쳐 와서 감흥이 덜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비야 대성당의 크기는 압도적이긴 하다. 부활절 축제 중의 성당 안은 사람들로 가득해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낮게 깔린다. 성당 내부 지도까지 주는 큰 성당이다. 성당을 돌아보며 히랄다 탑(La Giralda)을 찾는다.
이슬람의 모스크 첨탑이던 히랄다 탑은 16세기 기독교인들이 종루를 설치하면서 대성당의 부속 탑이 되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꼭대기까지 오르는 길이 계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랍인들이 말을 타고 올랐다는 전설이 맞는 듯하다. 


정상에 오르니 산들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관광객이 워낙 많아 종루 아래 서서 전망을 보는 것도 순서를 기다린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카메라를 꺼내 드는데 어떤 동양 여자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다가온다. 그녀는 포르투갈의 코임브라 대학교에서 교환학생 중인 중국인이다. 마카오 태생의 이 여대생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반색이 된다. 듣자 하니 남자친구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다. 부활절이라 시간을 내서 세비야로 왔다는 상냥한 아가씨 덕분에 히랄다 탑에서의 심심한 시간이 활기를 띤다. 


탑에서 내려다보는 성당 바깥의 광장과 거리는 선명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구시가의 모습이다. 저 아래에서는 왜 그리도 소란스러웠는지 모르겠다. 근접해서 보는 것과 떨어져서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며칠을 돌아다니던 거리를 내려다보는 게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다.
히랄다 탑에서 보면 성당 지붕도 보이고, 대성당 마당에 오렌지 안뜰(Patio de los Naranjos)이라고 불리는 이슬람식의 정원도 보인다. 이 전망 또한 참 좋다. 아랍인들을 거쳐 기독교인들이 오르던 탑에서, 지금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세비야를 내려다본다. 


이베리아 반도가 다른 유럽 여행지보다 독특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슬람이나 기독교, 유대교 등 이질적인 문화의 조합 때문이다. 플라멩코도 집시 문화라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스페인 남부의 따뜻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기후까지 더해져 최적의 조건이었을 것이다.


히랄다 탑에서 내려와 웅성대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성당 내부를 관람한다.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코스를 따라 박물관 같은 각 방들을 들락거리지만 성당을 너무 많이 보며 여행해서인지 화려한 황금빛 제단에도 그다지 감흥이 일지는 않는다. 그래도 옆 사람들의 감탄사는 귀에 들어온다. 부활절의 세비야를 목표로 여행을 왔고 여기 대성당에 들어왔다면 그들의 감탄사는 당연한 것이다.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웅장한 대성당의 실내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낮게 울린다. 부활절 축제 중의 세비야 대성당의 오늘이, 의미 이상의 의미인 사람들이 이 성당 안에 다수라는 것은 알 수 있다.


히랄다 탑에서 내려다보이던 오렌지 나무가 가득한 안뜰로 나온다. 대성당에서 나온 사람들의 마지막 코스가 이 정원이다. 주황색 오렌지들이 나뭇잎 사이에 숨어 매달려 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자꾸 쳐다보게 된다. 마지막 문을 나서면 바로 세비야의 거리인데 대성당 안뜰에서 보는 히랄다 탑과 성당은 마치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다. 언젠가부터 세비야의 배경인 이 건축물 아래, 사람들만 바뀌어 들락거린다. 역사는 그렇게 흐르는 것이다. 정문만큼이나 후문에도 많이 모인 사람들을 헤치고 대성당 밖으로 나온다. 


인파를 피해, 나름 익숙해진 산타크루스 지구의 거리를 걷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니다가 해물 빠예야(Paella)와 맥주 한 잔을 주문한다. 축제를 맞이한 거리에는 관광객이 넘쳐나고 식당마다 사람이 미어터진다. 이럴 땐 혼자 식당에 자리를 잡는 게 미안할 지경이다. 세계적인 축제의 한 복판을 혼자 여행하는 것은 좀 서글프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최대한 즐겨본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플라멩코 그림이 그려진 엽서와 기념품도 사며 다니다가 약속 장소인 대성당 앞 승리의 광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의외의 풍경을 만난다. 대성당 앞 축제의 행렬의 혼잡함이 머지않은 골목에 한 할아버지가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북소리며 사람들 소리며 아랑곳없이 몰두하시는 모습이다. 옆을 보니 한 소녀가 그림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분은 세비야의 풍경을 그려서 파는 화가다. 세비야의 시민 입장에서 보면 축제는 일상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림을 그리거나 플라멩코 쇼를 하거나 기념품을 팔고 식당을 여는 일들이 일상인 사람들에겐 축제는 해마다 반복되는 평범한 일이다. 


리스본에서 만났던 엠이 내가 도착한 하루 뒤 세비야에 도착했다고 해서 저녁을 함께 하기로 약속을 해두었다. 약속한 여섯 시. 대성당 근처에서 엠을 만난다. 리스본에서 겨우 하루를 함께 한 인연인데도 한국에서 알던 사람처럼 무지 반갑다. 그런데 골목마다 퍼레이드의 물결 때문에 원하는 방향으로 걸을 수가 없다. 떠밀려 걷다가 빠져나오니 생각지도 못한 로마식 석주(Roman Columns) 유적까지 만나게 된다. 저녁을 먹으려고 만났는데 한 시간 이상을 거리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바(Bar)를 찾아들어가 샹그리아와 타파스를 주문해 담소를 나눈다. 바텐더는 한국어로 적힌 추천 메뉴를 보여줘서 우리를 당황시킨다. 세비야에 한국인이 많이 오긴 하는가 보다. 리스본을 떠난 이후 계속 혼자였다가 엠을 만나 리스본과 세비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게다가 함께 먹는 음식은 얼마나 맛있는지. 


오늘 도착한 엠은 피곤하다며 호스텔로 돌아가고, 나는 거리로 다시 나온다. 거리는 여전히 끝이 없는 퍼레이드의 물결이다. 밤에도 길가에 사람이 너무 많다. 첫날 다녀온 에스파냐 광장으로 가보기로 한다. 사람도 많고 노점도 있어서 걷기 좋다. 에스파냐 광장의 야경은 명성보다 아름답다. 무엇이 가로등이고 어느 것이 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둥둥거리는 북소리도, 축제의 인파도 사라진 고요한 광장에는 타일로 장식된 아름다운 건물들이 달빛과 인공의 불빛을 받고 유유히 서 있다.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가다 느닷없이 이상한 나라에 가게 된 앨리스처럼, 어쩌다 보니 부활절 축제의 한 가운데에 세비야에 머물게 되었다. 축제 속에 흠뻑 빠져 사흘을 보냈고, 나의 세비야 여정은 이것으로 끝이 난다. 축제가 없는 계절의 세비야에 다시 한 번 와 보고 싶다. 북소리와 퍼레이드가 없는 평범한 일상의 세비야를 느긋하게 즐길 그날을 기대하는 것은, 그만큼 세마나산타의 세비야가 강렬했기 때문일까?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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